태그 : 호텔아이리스
2007/07/20   [밑줄] 그날은 구름이 잔뜩 꼈다 [4]
[밑줄] 그날은 구름이 잔뜩 꼈다
... 거리는 묘한 적막에 싸여 있었다. 해변에도 사람은 그림자도 없고 갈매기만 눈에 띄었다. 레스토랑의 테라스는 대낮에도 텅텅 비어 있었다. 성벽 매표소, 보트 대여점, 빙수가게, 관광 택시 회사, 사람들은 어디서나 남아도는 시간을 어쩌지 못해 멍하니 있었다. 비수기가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일찌감치 장사를 접은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한산한 해안 길에 내리쬐는 햇빛이 유난히 눈부시게 느껴졌다.
  그날은 구름이 잔뜩 꼈다. 낮인데도 새벽 같았다. 태양은 보이지 않고 푸르스름한 회색 구름이 겹겹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바다도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기분이 음산해지는 색이었다. 결코 아름답지도 않은데 순수하고, 풍경 전체를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마치 숨을 쉬듯 꿈틀 거렸다. 수평선 언저리에만 길쭉한 띠 같은 하늘이 간신히 보였지만, 그것조차 밀려오는 구름의 무게에 짓눌려 버릴 듯했다. 바위에 앉아있는 갈매기도 불안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날아오르기를 주저하는 듯했다.
  우리는 유람선 갑판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 갑판에 넘쳐나도록 타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도 사라지고 없었다. 물건을 사러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인 듯한 보건소 관리인이 선실 창틀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커피 파는 아저씨는 카운터에 나와 뱃머리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 외에는 달리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유람선을 탄 듯한 관광객 몇 명이 있는 정도였다. ...



[호텔 아이리스] 중에서, 오가와 요코, 김난주 옮김, 이레, 2007




어머니와 함께 관광지에 있는 호텔에서 카운터 일을 보고 있는 17살 소녀와 가까이에 있는 섬에 혼자 살고 있는 아버지뻘 되는 한 번역가의 사도-마조히즘 방식의 사랑이야기로 한 줄 요약할 수 있는 소설이지만, 정작 눈에 들어온 것은 위와 같은 무심하고, 조용한, 그래서 나른하고 불안한 느낌이 드는 풍경의 묘사였습니다. 유람선 갑판에서 바라본 풍경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마치 내 자신이 그곳에서 음산해지는 하늘 색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오가와 요코 작품은 - 이 작품만큼이나 분위기가 만만치 않은 - 소설집 [임신 캘린더]와 [미나의 행진] 밖에 읽지 않았는데, 만약 [미나의 행진]이나 [박사가 사랑한 수식]만 읽으신 분이라면 화들짝 놀라실 것 같다는 생각드네요. SM이나 성애에 대한 묘사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다른 책들이 있으니 - 예를 들면 와타나베 준이치의 [샤토 루즈]나 무라카미 류의 여러 작품 - 오가와 요코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본다는 생각으로 읽어보시는게 어떨까 합니다.




p.s. 원서와 번역본 표지. 흠..
by delius | 2007/07/20 23:13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4)
<< 이전 다음 >>



카테고리
전체
book
biography
obituary
music
entertainment
movie
internet
tour
underline
mistyped
photo
talk
publishing
press
exhibition
bonus
최근 등록된 덧글
안녕하세요 .. 시간이 ..
by at 08/05
지식이 짧아서 잘 모르..
by 골룸 at 05/08
Rorex가 아닌 Rolex로..
by ㅇㅇ at 06/30
파리여행을 끝으로 올라..
by purejoy at 11/26
- 이요님: 네 신기한 소..
by delius at 08/31
두번째 중세박물관의 그..
by 이요 at 08/30
- 카이토님 : 감사합니다..
by delius at 07/29
오~ 감사합니다 딱 이렇..
by 카이토 at 07/25
- 잘나가는 꼬마사자님:..
by delius at 07/19
저거 콩시에르 쥬리였군..
by 잘나가는 꼬마사자 at 07/18
메모장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최근 등록된 트랙백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by 잠보니스틱스
이전블로그
2013년 09월
2013년 08월
2013년 07월
2013년 06월
2013년 05월
2013년 01월
2012년 12월
2012년 11월
2012년 10월
2012년 09월
2012년 08월
2012년 07월
2012년 06월
2012년 05월
2012년 04월
2012년 03월
2012년 02월
2012년 01월
2011년 12월
2011년 11월
2011년 10월
2011년 09월
2011년 08월
2011년 07월
2011년 06월
2011년 05월
2011년 04월
2011년 03월
2011년 02월
2011년 01월
2010년 12월
2010년 11월
2010년 10월
2010년 09월
2010년 08월
2010년 07월
2010년 06월
2010년 05월
2010년 04월
2010년 03월
2010년 02월
2010년 01월
2009년 12월
2009년 11월
2009년 10월
2009년 09월
2009년 08월
2009년 07월
2009년 06월
2009년 05월
2009년 04월
2009년 03월
2009년 02월
2009년 01월
2008년 12월
2008년 11월
2008년 10월
2008년 09월
2008년 08월
2008년 07월
2008년 06월
2008년 05월
2008년 04월
2008년 03월
2008년 02월
2008년 01월
2007년 12월
2007년 11월
2007년 10월
2007년 09월
2007년 08월
2007년 07월
2007년 06월
2007년 05월
2007년 04월
2007년 03월
2007년 02월
2007년 01월
2006년 12월
2006년 11월
2006년 10월
2006년 09월
2006년 08월
2006년 07월
2006년 06월
2006년 05월
2006년 04월
2006년 03월
2006년 02월
2006년 01월
2005년 12월
2005년 11월
2005년 10월
2005년 09월
2005년 08월
2005년 07월
2005년 06월
2005년 05월
2005년 04월
2005년 03월
2005년 02월
2005년 01월
2004년 12월
2004년 11월
2004년 10월
2004년 09월
2004년 08월
2004년 07월
이글루링크
erehwon.LAB
修身齊家萬事成
여성주의 코칭 연구소 Fem..
평범한 블로그
GROOVY FREAK
[SCENE-N-MIND]
log
SabBatH
까모의 룰루랄라~
잠보니스틱스
鐵木居士의 月印千江
河伊兒의 고물상
대답이 있다.그냥 시체는..
Extey Style
그냥그냥
들풀.넷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HIBERNATE IN LIBRARY
단순하고 소박하게
잉여 인간을 벗어나다 (..
추리소설 1000권 읽기! ha..
Closed
.
Love calling Earth : ..
Null Model
은하수를 여행하는 스트..
웅이네 방
일본에 먹으러가자.
秘するが花
Trivia
WALLFLOWER
Crooked House (..
the world is naked.
디지털을 말한다 by oojoo
한일 아이돌 뒷담화 온..
♠후리지아 향기처럼♠
v e r . b e t a
The Phantasist
卷き戾しの街
뭐 별 거 안 하는 블로그..
사는 이야기~
Pepe
Schubertiade
자유분방 / 殺身成戱
어스름한 달빛에 취해
§ 응!! §
차이컬쳐
이제는 없는 공주를 위하여
나르키
주로, 텍스트의 공간
isao의 IT,게임번역소
산하의 썸데이서울
사색의풍경
다이나믹 부산
witched little tiny hut
Dj ccuri의 림보니카니아
blogger jely
Sion, In The 3rd Dim..
누구의 것도 아닌 집
漁夫의 'Questo e quell..
Neverland
외노자
http://studioxga.net..
무명
Surviving in Australia
중급 애호가의 이런저런..
Lifelog
kumakuma memory ..
starla's trash can 혹..
Fithelestre in an Egloo
Life is hard when you..
골룸의 골방
다시 숲
てるてるx小女
.
無爲徒食
maniacs
AURA's Showcase
Photo archive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ad hoc record
평범한 김차장의 좌충우..
a quarantine station
Cafe Greco
Nomadic-land
D's Notizbuch
리치 커피 올드 패션의 ..
All about IT Trends
이곳은 雨柳堂입니다.
484
외계인 교차점
★ Memo Log !
LoLieL the Black On..
naoya.egloos.com
푸르미 세상
블로그스팟
담 배 가 없 다
drifter
메르카토르
그리고 나의 남은 이야기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Bistro Fishbowl
하이드
white table
아뿔싸! 지구에서 살다...
딸기밭은 영원히!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ㅁ-
묵색 혹성
한글이 꿈틀
モモのカンヅメ
쭈르르'스 이글루
손안의책 편집부입니다
[칼럼니스트]
날개를 펴는 곳
변천 Komix
이전
品절
허클베리 핀의 모험
woody's film review
bono
알라딘의 Coool~하게..
꼬냉이 야옹 야옹 *^o^*
33.GONY
두근두근 라이프
dayBYday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
Seek Your Daimonion
Kindred Spirits - 빨..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Dust's house
conan's lazy blogging
레스톨 블로그
더러운 물 속에서
아돌군의 잡설들.
로망의 연금술사
행복한 짐승
: 숨어있기 좋은 방 :
Black or White
High enough!
리비에라를 쏴라
주 모씨의 이바구별곡
쿤데라 할아버지도 못이룬..
ms.b.adler's-I.T.U..
동남아시아 11개국 Chan..
모리제의 일본생활
역설의 제 12 우주
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Nanna's memory
레인블루 :: 책과 영화 ..
이공간 [異契褸雅粹透..
월간 키노 KINO 인덱스 ..
1+1=2
For the great stone f..
쓸데없는 것들의 박물지_
╔☺ ♫♪ 유치짬뽕 샤..
英雄本色
후랭클리 스피킹
잉여력27년
양을 쫓는 모험
Jeimian in Okinawa ..
23시 59분의 잉여로운 잡담실
그냥 사람이 사는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김부장의 가구 만들기
낭만주의자의 취향
寂兮寥兮
DICKHOUSE
finnegans cake
b군, m양을 만나다
.
뿔언니의 쓰잘때기 없는..
허주사우르스
zizek
hanuol blog
新 YoRoZU放談
ひるの幻、よるの夢
애자일 이야기
Homo Peregrino in the..
poeme electronique
커피광 낙서광
Backstage
QUELPART
Like a Complete Unk..
ex
펠레아스의 이글루
좋은 것만 좋아
How I Learned To Sto..
새로운 것은 언제나 신나게..
the Sputnik Sweethe..
무재칠시(無財七施)
예술영화전문블로그 씨..
Fantastic world
괜스레저렇게
thru and thru
Lost and Found
나의산행기
밤의 열두 시간
O.O
-
참 쓸쓸한 당신의 독
투블럭Ai
mocca
다섯번째 방
정치는 현실입니까?
안녕하세요
hongahn.me
youlhwadang 'librar..
...............
PLAYGROUND
Hey Julie
joooh
Post Gun-in era
숨은 방
베를리너에서 서울리따로.
앤잇굿? Since 2007
steal life
수줍은 느낌의 미소
.
I'm Not Joking
~Floating Paradise~
dunkbear의 블로그 3.0
FLOW
시사만화 '골판지'
The Last Order
Secret Chamber
SEOUL-in
words can hurt you
♨ 영혼은 죽지않아- 하..
crisp
인생이란 필드의 문화기술지
arctic letters from lon..
wanna be a free man.
클래식 음악 노트
Jiy
잘나가는 꼬마사자의 사파리
이글루 파인더

포토로그

D E L I U S
태그
기메박물관 퐁텐블루 오르세 캐브랑리박물관 로댕미술관 키스해링 파리건축박물관 클뤼니중세박물관 베르사유 퀴리뮤지엄 퐁텐블로 들라크루아미술관 얀덱스 팡테온 키스해링전 퐁텐블로성 파리여행 베르사이유궁전 퀴리박물관 일리야세갈로비치 퐁텐블루성 그랑트리아농 베르사유궁전 세갈로비치 파리 프랑스여행 쁘띠트리아농 오르세미술관 일랴세갈로비치 뱅센
전체보기
rss

skin by Ho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