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년(중종 38)에 간행한 법전 [대전후속록]에는 책의 인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규정이 실려 있다.
책을 인쇄할 때 감인관(監忍官), 감교관(監校官), 창준(唱準), 수장(守匠), 균자장(均字匠)은 1권에 한 자의 오자가 있을 때 태 30대에 처한다, 한 자가 더 틀릴 때마다 한 등급 높은 처벌을 가한다. 인출장(印出匠)은 1권에 한자가 틀리거나 글자가 지나치게 짙거나 희미한 경우 태 30대에 처한다. 한 자가 더 틀릴 때마다 한 등급 높은 처벌을 한다. 모두 글자 수를 계산하여 처벌한다. 관리들이 다섯 자 이상이 틀리면 파면한다. 창준 이하 장인들은 매를 맞은 후 근무 일수 50일을 줄인다. 사면이 되기 전에는 다시 쓰지 않는다. 원본에 오자가 있는 경우에는 이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조문은 활자로 책을 인쇄할 때 오자를 낸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이다. 이 조목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책 인쇄와 관련한 여러 직책이다. 감인관은 인쇄를 감독하는 관리, 감교관은 교정을 감독하는 관리이다. 감인관과 감교관은 실제 인쇄를 담당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이를 감독하는 관리이다. 창준 이하는 실제 인쇄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창준은 원본, 즉 인쇄를 위한 원본 내용에 들어 있는 글자를 불러주는 사람을 말한다. 창준이 불러준 활자를 찾아내어 인쇄할 판에 배열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 수장이다. 수장은 평소에 활자의 보관과 관리도 담당했다. 균자장은 식자판에 배열된 활자가 잘 인쇄될 수 있도록 글자의 높낮이를 고르게 하는 사람을 말하며, 인출장은 인쇄를 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인쇄를 관장했던 만큼 인쇄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업무가 상당히 분업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쇄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앞의 조문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인쇄할 때 오자가 발생할 경우에 대한 처벌 규정이다. 이 규정에서 말하는 1권이란 오늘날의 책 1권의 개념이 아니다. 오늘날의 1권은 조선시대에는 1책이라고 했으며, 1책이 1권인 경우도 있지만 1책에는 보통 2~3권이 들어 있다. 옛 책의 권은 오늘날의 장(章)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책들은 요즘 책들에 비해 글자가 컸기 때문에 1권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1권에 오자 한 자가 있을 때 태형을 가한다는 것은 참으로 엄격한 처벌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관리들은 다섯 자 이상 틀리면 파면을 당하기까지 했으니 실로 엄청난 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인출장은 인쇄 상태가 좋지 않아도 자수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조선출판주식회사]중에서, 이재정, 안티쿠스, 2008
조선시대에 태어나서 책 만들었으면 등이 남아나는 일이 없다가 바로 파면당했을 듯... ^^;;;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해주는 책이에요.
p.s. 멋진 표지. 민진기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