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신유희
2009/12/12   [밑줄] 좋은 집
2009/04/01   [밑줄] 그러니 요리를 부정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8]
2008/06/07   [밑줄] 고양이는 다른 동물과는 달라요 [6]
2006/10/02   [밑줄] 인간이란 결국 상대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한단 거지
[밑줄] 좋은 집
... 멀미가 날 것 같아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가 위를 달리는 간선도로에서 내려다보니, 옛날에는 신흥주택지였을 지역이 펼쳐져 있다. 지금은 녹색도 적고, 집이나 아파트 같은 집합주택이 복작거리고 있어서, 그림물감을 전부 섞어놓은 듯한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색.
  "괜찮아요?"
  예에,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냥……, 좋구나 생각되는 집이 없다 싶어서요."
  저마다 사연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본가도 그 나름으로 심혈을 기울여 지었고, 추억도 애착도 있다. 하지만 '좋은 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한다.
  "이렇게 한눈에 봐서 아름답지도 않고 개성도 없다는 건, 역시 한 채 한 채가 좋지 않다는 거겠죠?"
  후쿠시마 씨는 잠시 침묵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전후에 생겨난 바라크(baraque, 막사 幕舍_옮긴이) 문화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좋은 집'을 지으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돈은 없지만 역시 집을 갖고 있다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2, 30년이면 지저분해지는 싼 가격의 바라크를 사게 된다. '좋은 집' 보다 잘 팔리니까 잇달아 싼 집을 짓는다. 오래되면 부수고, 다시 새로운 바라크를 짓는다. 그러한 일이 되풀이해서는 아름다운 거리가 조성될 리 없다. 운 좋게 돈이 있다 해도, 그런 거리에서 성장하면 무엇이 '좋은 집'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초호화 바라크를 짓고 말 때도 있다. 이 얼마나 변변찮은 나라인지. 그런 나라에서, 나 또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저예산으로 집을 지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나부터가 '좋은 집'이 어떤지 모르고 있다. ...



"지어도 돼?" 중에서, [지어도 돼?], 나카지마 타이코, 신유희 옮김, 소담출판사, 2009




단편 2개를 묶은 책. 표제작인 "지어도 돼?"는 30대 중반의 주인공이 자신이 살고자하는 집을 짓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세밀한 논픽션 같은 보고서 형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에 대한 감상을 늘어 놓는 것도 아닌 중간 지점을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주택 전시장에 갔더니 입주 예정자 란에 독신은 아예 없는 에피소드나 마리가 처음에 원한 집이 "현관문을 열면 바로 욕실인 집"이었던 점 등 재미있는 부분도 많지만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집을 짓는 꿈을 꿀 수 있구나!"하는 부러움이었어요. 물론 주인공 마리도 부모님이 양도해준 교외의 땅이 있고 일반 사원급 직장인은 아니라서 집을 짓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이런 상황이 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동안 접한 건축사무소를 그린 만화나 일본 드라마나 소설에서 자신의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 설정이 우리보다는 훨씬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창을 고르러 가서는 싼 일제를 할까 비싼 미제를 할까 고민하는 장면을 보면 마리 역시 넉넉한 형편에서 집을 짓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 우리나라에서 마리 정도의 재력이나 상황이 되는 사람이 미혼이든 독신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집을 짓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하고 물어보면 가능성은 아주 낮을 것 같았거든요. 함께 실려있는 "그가 보낸 택배" 역시 귀여운 면이 있어서, 앞으로 나카지마 타이코 책이 또 눈에 띄면 읽어볼 것 같네요. 아래는 역시 "지어도 돼"의 앞부분에 마리가 깁스를 하고 커피숍에 있다가 느낀 점을 짧게 묘사한 부분인데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 역시 옮겨적어 봅니다. 이때는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이에요.


... 파트너가 있으면 몸이 멀쩡해도 쟁반을 정리해준다. 그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둘이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다는 건 부럽다. 혼자 살다 보니 내가 움직이지 않고선 일이 진척되질 않는다. 때문에 커피를 다 마시면 바로 쟁반을 치우고,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갖고 싶지도 않은 머그컵을 멍하니 보고 있을 시간 따위 주어지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여유를 갖는 것조차 잊기 십상이다. ...




p.s. 번역본과 원서 표지~ 참고로 마리는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아요~
by delius | 2009/12/12 09:21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0)
[밑줄] 그러니 요리를 부정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인간은 살기 위해 먹어야지 미각을 즐겁게 하려고 먹어서는 안 된다. 간디의 말이지요. 이 가르침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까? 이 세상 모든 동물은 남의 생명을 빼앗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먹지 않으면 자신이 죽고 만다는 숙명을 짊어진 채 살아 가고 있지요. 그중에서도 인간이란 동물은 빼앗은 생명을 희롱해 가며 요리라는 행위를 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요컨대 간디는 그것을 죄 많은 행위라며 부정하고, 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과연 그게 올바른 것일까요? 나는 미각이란 인간 본능의 일종이자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신이 동물들에게 부여한 먹는다는 행위에는 식욕이라는 본능이 따라붙습니다. 동물들이 먹는 일을 잊고 죽어버리지 않도록 신이 덧붙여준 것이지요. 이는 모든 동물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본능이며, 그 가운데 인간에게만은 특별히 미각이라는 본능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즉, 다른 동물이 느끼는 식욕이 인간에게는 미각이기도 하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요리를 부정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간디의 가르침을 좇아 지킨다면 인간은 멸망할 게 뻔합니다. 그것은 교미를 잊은 동물이 멸종되어가는 것과 같은 일이에요 어째서 신은 인간에게만 그런 본능을 부여했는지, 이건 논하기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이유는 신밖에 모릅니다."


[금단의 팬더]중에서, 타쿠미 츠카사, 신유희 옮김, 끌림, 2008




200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과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순위"는 다른 것으로, 저도 처음에는 1위하면 대상인가? 했었습니다. -_- 순위를 매긴 것은 그 해 출간된 미스터리 작품의 랭킹을 정하는 것이고, 대상은 신인작가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제1회 수상작인 [4일간의 기적]만 봐도 "흠... 이게 미스터리인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금단의 팬더] 역시 "오 본격 미스터리인가!"하고 읽기 시작하신다면 분명 실망하실 만한 작품입니다. 책 뒷표지에 보면 "마치 미스터리라는 양념을 가미한 일품요리를 먹은 것처럼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느꼈다"는 평이 있는데 이 책의 느낌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입니다. 미스터리는 양념인 것이지요. ^^


작가는 츠지요리학교 - 그 [미식예찬]의 츠지~ - 를 나온 프랑스요리사. 그래서 그런지 요리에 대한 묘사나 음식의 맛을 표현한 부분은 더할나위없이 풍성하고 멋집니다. 예를 들면 "녹아들 것 같은 푸아그라의 농후함과 신선함은 물론이고, 뒷받침하는 아스파라거스의 쌉쌀한 단맛과 식감이 폭신한, 결이 고운 멜렝게.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트뤼프(송로 버섯)의 선명하고도 강렬한 향기가 한데 어우러진 걸작 중의 걸작이었다. 적당히 흩뿌려져 있는 녹색 잎의 짭짤한 맛이 밋밋해지기 쉬운 맛을 멋지게 다잡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들은 주역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고, 혀에 남는 여운은 어디까지나 푸아그라에서 오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묘사인데 잘 만든 푸아그라 요리 한 번 먹어보고 싶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더라구요. : ) 소설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 형사 아오야마 아츠시와 상사 혼다 콤비도 제법 잘 어울리고 재미있는 캐릭터라서 결말을 어느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마지막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요리 좋아하시는 분이나 (특히 프랑스 요리) 색다른 미스터리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딱 맞는 선택으로 보입니다. 위에 밑줄 그은 부분 이후로 제목의 팬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도 참 흥미로웠습니다.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by delius | 2009/04/01 00:41 | underline | 트랙백 | 핑백(1) | 덧글(8)
[밑줄] 고양이는 다른 동물과는 달라요
... 자기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자랑을 한바탕 늘어놓은 후, 야마자키는 초보자의 준수사항을 일러주듯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과는 달라요.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게 이니라, 인간을 지배하죠. 분명히 기르는 건 난데, 어느새 그렇게 돼버린다니까요. 집 안에 작은 왕이나 여왕을 모시고 사는 거죠. 아니, 권모술책으로 군림하는 라스푸틴이랄까. 누구에게 접근해야 자신에게 가장 득이 될지 꿰뚫는 것 같아요. 방해하는 자는 배제하려 들고, 자신의 영역을 제 편할 대로 구축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아는 거죠. 사악하다면 사악하다고 할 수 있지만, 뭐, 그게 매력이랄까 마력이라서. 말하자면……."
  몹쓸 여자에게 골수까지 쭉쭉 빨아 먹힌 호색한 같은 표정으로 야마자키는 말했다.
  "고양이는 사람에게 씌는 겁니다."



[벽장 속의 치요] "늙은 고양이"중에서, 오기와라 히로시, 신유희 옮김, 예담, 2007




오기와라 히로시 책 중 처음 읽게 된 소설. 단편 9편이 실려 있는데 뒷표지의 말처럼 "슬프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작품도 있고 - 표제작인 "벽장 속의 치요"에 딱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더군요 - 서술 트릭을 잘 사용한 작품("Call")도 있고, 블랙코미디 같은 단편("냉혹한 간병인")에 위에 밑줄 친 "늙은 고양이"처럼 다소 상투적이긴 하지만 환상특급 시리즈 느낌이 나는 소설도 담겨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머나 호러, 미스터리.. 어느 쪽으로 구분하기도 애매한 "어두운 나무 그늘"이라는 단편이 맘에 쏙 들었는데 제가 이런 소재(숨바꼭질하다 동생이 실종된 후 15년 만에 다시 그 곳을 방문한 언니 이야기)의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찾아보니 8권이나 출간되어 있던데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p.s. 국내표지, 원서표지, 국내표지가 훨씬 소설 내용을 잘 이야기 해주는 것 같네요. 원서표지 무섭삼 ㅠㅠ
by delius | 2008/06/07 10:33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6)
[밑줄] 인간이란 결국 상대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한단 거지
"나는 너랑 달라서 엔도 씨밖에 모른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래도 최근 들어 알게 된 게 있어. 남자한테 왜 지금 부인과 결혼했냐고 물어보면, 사실 많은 남자가, 그 사람 약해서라고 대답하는 거야. 약하니까 함께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같은 여자한테도 하겠지? 그러면 여자들은, 그 남자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고 대답해. 하지만 말야, 이 세상에 약한 여자란 본시 존재하지않고, 마찬가지로 믿을 수 있는 남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니? 여자를 약하다고 말하는 남자는 자기 자신이 약한 거고, 남자를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여자는 자기 자신이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성격인 거야. 인간이란 결국 상대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한단 거지."


[내일은 멀리 갈거야] 중에서, 가쿠타 미츠요, 신유희 옮김, 해냄, 2006




가쿠타 미츠요의 [인생 베스트 텐]이나 이 책을 읽으면서 [대안의 그녀]가 잠깐 행운으로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서평에서는 이 책을 젊은층의 트랜디한 이야기로만 본 것 같은데, 위의 밑줄 그은 대목을 보면 단지 주인공의 젊은 시절이 주요 이야기의 흐름이 된다고 해서 다 영상소설이나 쿨한 연애담은 아닌 것 같다. 원제는 [내일은 아주 멀리 가자 あしたはうんと遠くへいこう](2005)




p.s. 예전에는 가쿠타 미츠요라고 하다가 요즘에는 다들 가쿠타 미쓰요라고 하는 듯~


p.s. 원서 표지
by delius | 2006/10/02 09:36 | underline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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