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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6   [밑줄]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2]
2009/06/21   [밑줄] 자신이 쓴 글을 상대방이 고친다는 게 고통스럽지는 않나요?
2008/11/29   심문 | 토머스 H. 쿡 [8]
[밑줄]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 4시가 넘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하로 내려가 금고 문을 연다. 얇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지퍼를 연다. 안에는 라텍스 장갑과 알코올, 면봉이 들어 있다. 작은 주머니에 깨끗한 주삿바늘과 수술용 튜브, 사용하지 않은 링거백 두어 개를 챙겨 넣는다. 금고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운 후 주머니를 재킷에 쑤셔넣는다. 몇 시간 후, 동이 틀 때까지 피를 걷으려 돌아다녀야 한다. 내일 밤, 데일 호드를 추적하려면 기력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규칙이 있다.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그 규칙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


1) 사는 동네에서 사냥하지 말 것
2) 욕심 내지 말 것
3) 잔인하게 죽이지 말 것
4) 나중에 눈치 챌 만한 사람은 피할 것
5) 같은 사람을 두 번 이상 노리지 말 것
6) 허락 없이 클랜 구역에서 사냥하지 말 것
7) 증인을 남기지 말 것


이 규칙들을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다. 먹는 자리에서 볼일 보지 말 것. 하지만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



[이미 죽다] 중에서, 찰리 휴스턴, 최필원 옮김, 시작, 2009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이 나던 뱀파이어를 만나다가, 해만 뜨면 피부를 태우는 자외선 단파를 피해 두건을 두르고 면장갑과 썬글래스를 끼고 중동지역 사람들처럼 베일까지 뒤집어쓰고 외출을 하는 주인공 뱀파이어를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언제부턴가 햇빛 정도는 능히 이겨내고 성수(聖水)를 두려워하는 것은 옛날이야기라고 외치는 뱀파이어들이 나오는 소설, 영화만 접하다가 이렇게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뱀파이어가 나오는 소설을 봐서 그런지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주인공 조 피트는 뉴욕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 갖고 있는 뱀파이어 클랜들 사이에서 일거리를 맡아 처리하는 프리랜서 사립탐정. 어느 클랜에도 속해있지 않은 그에게 가장 큰 클랜인 코얼리션이 사건을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소설의 전개는 빠르고 주인공은 매력적 유머가 넘치며 사건이 흘러가는 방향과 해결 방식도 적절합니다. 뱀파이어와 좀비, 좀비균의 보균자, HIV 감염인(피트의 애인인 이비가 감염인이에요)이 등장하기 때문에 복합적인 의미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저는 이런 것을 모두 떠나서 소설적인 재미만으로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5부작의 첫작품으로 앞으로 후속작품도 번역되길 기대하며, 읽으실 분은 아래 옮겨적은 작가와의 인터뷰를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유비무환! : -)


어떤 분들이 [이미 죽다]의 독자가 되리라 생각합니까?
유비무환이라죠? 눈물이 솟구치는 로맨틱한 뱀파이어 연애물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둡니다. 노골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처음 열 페이지부터 뇌를 먹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p.s. 번역본 표지는 원서표지를 그대로 가져온 거인데 맘에 쏙 듭니다. 특히 아래 송곳니 부분 : )
by delius | 2010/01/16 00:10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2)
[밑줄] 자신이 쓴 글을 상대방이 고친다는 게 고통스럽지는 않나요?
자신이 쓴 글을 상대방이 고친다는 게 고통스럽지는 않나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사실 그 부분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쉬웠어요. 몇 가지 이유가 있죠. 첫째, 우리의 기묘한 공동 작업에는 신뢰가 필요해요. 우리는 서로의 독자이자 편집자인 거죠. 즉, 서로의 글을 고친다는 것은 결코 개인적인 이기심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그걸 좀 더 니키 프렌치다운 작품으로, 좀 더 니키 프렌치다운 스타일로 만들어 나가는 거죠. 이건 파워 게임 같은 게 아니에요. 좀 더 나은 작품을 쓰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죠.
  그리고 우리는 절대 상대방 앞에서 글을 고치지 않아요. 그건 너무나 가혹하죠. 우린 혼자서 작품을 고치고, 컴퓨터 모니터에 수정된 원고가 나타났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글이 고쳐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말다툼 같은 건 안하시나요?"


그럴리가요. 우리는 꽤 자주 다투는 편입니다. 달콤하고 평화로운 시간은 아니죠. 그렇다고 상대가 글을 고친 것을 두고 싸우는 건 아니에요. 대신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 설거지는 누가 할 차레냐 같은 걸로 싸우죠. 정말이지 우리가 쓰는 소설들은 우리의 대화와 의견의 불일치에서 비롯됩니다. 작품은 일종의 몸부림에서 탄생하고, 이제 우리는 그걸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작가 인터뷰 중에서, [산자의 땅], 니키 프렌치, 노진선 옮김, 시작, 2008




작가 니키 프렌치라는 필명은 니키 제라드와 숀 프렌치 부부의 이름을 결합한 것이라고 합니다. 위에 밑줄 친 부분은 이런 공동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면 드는 항상 드는 의문에 대한 대답인데 작품에 대한 이해와는 별개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실 [산자의 땅]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많이들 이야기 하고 있는 초반부의 묘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텐데, 만약 이런 감금 상황 - 상상도 하기 싫지만 - 에 빠진다면 아마 정말 이럴거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면서도 치밀한 심리묘사가 인상적입니다. 초반이 강한 탓에 중반부의 흐름이니 결말의 마무리는 조금 처진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건 아마도 주인공이 그냥 평범하고 큰 특기나 놀라운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더 현실감이 느껴지는데 이런 식의 짧고 강한 마무리가 개인적으로는 살짝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2~3주 연락이 없어도 부모는 물론이고 회사동료, 친구 아무도 찾지 않는 모습이나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또 스스로의 기억에 의존하기도 어려운 상황 또한 무섭기는 마찬가지였구요.


초반부의 묘사가 거슬리는 분도 분명 있을 것 같은데(이런 일이 정말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정도로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데 꼭 그걸 소설로도 읽어야겠어? 하는 마음이 들 수도... )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어서 니키 프렌치의 다른 작품들의 출간과 영화화 된다는 작품을 기대해보려고 합니다. 영화화되기에 적합해 보여서 누가 이 역을 하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기도 좋은 작품이에요.




p.s. 번역본과 다양한 원서 표지
by delius | 2009/06/21 01:02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0)
심문 | 토머스 H. 쿡
[책을 읽고 나서]


핸드폰도 없고 CSI도 없고, 피의자의 프로필도 네트워크로 검색이 되지 않고, 밤샘조사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1952년 뉴욕의 가을을 배경으로 어린아이를 살해한 용의자에 대한 심문이 시작됩니다. 결정적인 물증도 없고 살인목격자도 없어서 이제 12시간만 지나면 범인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풀어줘야 합니다. 그 12시간 동안 마지막 승부라는 생각으로 용의자의 자백에 기대를 거는 형사들과 자신은 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용의자 사이의 지리하면서도 긴장이 사그라들지 않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전쟁은 (책의 소제목이기도 한) "삶의 차가운 진실"에 조금씩 접근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두뇌플레이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살인이 감추고 있는 거대한 음모를 밝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누가 그 아이를 죽인걸까? 하는 고전적인 미스테리물의 훌륭한 한 예가 될 만큼 후반부의 결말과 사건의 재구성은 감탄스럽지만 소설이 지닌 분위기가 쓸쓸하면서도 애잔해서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을 매력적이면서도 슬프게 만드는 다른 한 축은 크고 작은 조연들이 그려내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안쓰러운 이야기들인데, 죽어가는 마약중독자 아들로 괴로워하는 버크 반장이나 전쟁을 경험하면서 마음에 검은 얼룩이 새겨져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 전하기를 두려워하는 코언 형사, 그리고 4년 전 아이가 살해당한 이후 아내도 세상을 뜨고 단단하게 응어리진 슬픔을 안고 사는 살아가는 피어스 형사...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읽는 이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게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토머스 H. 쿡 작품 중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 같은데 출간 예정되어 있는 다른 작품도 빨리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래는 자신도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 피어스 형사가 피해자의 집에 방문해서 죽은 아이(캐시)의 옷장을 보고 생각에 잠기는 부분입니다. 다른 인상적인 구절도 많지만 소설의 쓸쓸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것 같아 옮겨 적어봅니다.


... 피어스는 아이의 옷이 걸려 있는 벽장을 바라보았다. 놀이 옷, 교회 옷, 앞으로 다가올 계절에 입으려고 챙겨둔 철 지난 옷이 생기 없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보자 캐시가 결코 입지 못할 졸업 가운과 웨딩드레스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이가 이 세상을 떠난 순간 그 모든 찬란한 미래 역시 사라진 것이다. 아이는 두 번 다시는 빗방울도, 햇살도, 따뜻한 여름 바람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어여쁜 미소를 지어 누군가의 마음을 밝히거나 평범한 날을 축복으로 바꾸는 마술도 부리지 못할 것이었다. 아이는 침대 옆에 놓아둔 자그마한 플라스틱 나팔을 다시는 불지 못할 것이고, 책상 위의 장난감 타자기를 다시는 두드리지 못할 것이고, 바닥에 놓인 인형의 집 가구들을 다시는 이리저리 옮겨놓지 못할 것이다. 아이는 엄마나 남편이나 미래에 낳은 아이에게 결코 "사랑해"라고 속삭이지는 못할 것이다. 한때 살아 있었던 귀여운 소녀의 소리와 감촉과 몸짓이 모조리 침묵 속에서 뻣뻣이 굳어 이제는 썩어갈 일만 남은 것이다. ...


[서지정보]


제목 : 심문
원제 : The Interrogation (2002)
지은이 : 토머스 H. 쿡 Thomas H. Cook
옮긴이 : 김시현
출판사 : 시작
발간일 : 2008년 07월
분량 : 355쪽
값 : 11,000원




p.s.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흑백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그리고 스페인어 번역본 표지.
by delius | 2008/11/29 09:32 | book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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