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김소영
2009/02/02   [밑줄] 기만이라기 보다는 이중규칙이지 [6]
2008/10/19   [밑줄] 불꽃축제는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5]
2007/05/03   [밑줄]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 [7]
2006/06/21   사신 치바 | 이사카 고타로 [5]
[밑줄] 기만이라기 보다는 이중규칙이지
  언제였던가, 다루미와 둘이서 빨간 신호등일 때 길을 건넜다.
  "너는 사막 한가운데에 신호등이 있어도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릴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당당하게 신호를 무시하는 녀석을 내가 놀리자.
  "사막 한가운데에 신호등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일부러 그쪽으로 가서 건너는 인간도 있냐?"
  하며 웃었다. 그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차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 건널목에서 예의 바르게 신호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할 필요는 없지만 빨간불일 때 건너는 데에는 두가지 규칙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절대로 차한테 피해를 주지 않을 것. 당연한 소리겠지만 빨간불에서 건너는 게 버릇이 되면 깜박하기 쉬우니까 규칙으로 정해두고 명심해야 돼. 신호등이 없는 장소에서 길을 건널 때 이상으로 차에 신경을 쓸 것. 멀리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도 그쪽 처지에서는 파란불인데 전방에 사람이 건너가고 있으면 불쾌하겠지. 조심하느라고 속도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원래 같으면 지나갈 수 있었던 신호에 걸릴지도 모르잖아."
  "또 하나는?"
  "아이들이 있을 때는 꼭 신호를 지켜야 한다는 것. 부모가 애써서 '빨간불에서는 서고 파란불에는 건너'하고 가르쳐 준 게 다 허사가 되잖아."
  "그건 기만 아니야?"
  "기만이라기 보다는 이중규칙이지. 아이들은 시야기 좁아.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어른만큼 넓은 범위를 보지 못하는 모양이야. 게다가 무언가에 정신을 빼앗기면 다른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임기웅변할 수 있는 판단력도 아직 다 키우지 못했고. 그러니까 우선은 신호를 지키는 단순한 방법으로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돼. 괜찮아, 이중규칙이라도. 사실은 어른들이 스스로 판단한 다음 신호를 무시하고 있다는 걸 간파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그 애들이 신호를 무시해도 괜찮은 거야. 그런 졸업시험에 통과하게 될 때까지는 아이들을 잘 속이고 싶어."
  물론 이 규칙은 다루미가 멋대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다루미는 이런 식으로 어떤 일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그 판단의 기저에는 언제나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무언의 전화 저편" 중에서, [가타부츠], 사와무라 린, 김소영 옮김, 한즈미디어, 2007




작품집의 제목 "カタブツ"라고 검색하면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 또는 착실하고 품행이 바른 사람."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밑줄 그은 다루미라는 등장인물과 쏙 어울리지요? 독특한 제목에 각 단편들의 제목도 줄거리를 짐작하게 하는 것들이 아니라서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작가가 일본 판타지 노벨대상 수상자라는 것을 알고 흠.. 잠깐 망설이면서 가장 짧은 단편부터 읽어봤는데 의외로 제 감성과 잘 맞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6편 모두 재미있었지만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위에 밑줄 그은 "무언의 전화 저편"이었어요. 올바르게 사는 다루미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는 점을 궁금하게 여긴 주인공이 그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으로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섞여 있는 작품이기도 한데 마지막에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도 그렇고 재미있는 결말 처리도 그렇고 여러모로 마음에 쏙들었습니다. 다른 몇 몇 작품들도 궁금증을 불러일으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보여도 미스테리에요!"라고 소리높여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독특한 일상(독특한 일상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만 ^^)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07년에 나왔는데 이후 사와무라 린 작품이 더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도 같은데 ㅜㅜ 아직 번역 대기중일거라고 생각해봅니다. :-)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첫번째 원서표지 묘하게 맘에 드네요. ^^

by delius | 2009/02/02 23:16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6)
[밑줄] 불꽃축제는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도도로키는 체념하듯 말한다. "불꽃축제는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하고 조용히 읊조린다.
  "무슨 말이에요. 뜬금없이."
  "마을마다 예산은 다르지만 말이야, 그래도 여름 휴가철이면 시집갔던 딸이 아이들 데리고 친정 와서 식구들끼리 함께 구경 가거나 하는 점이 똑같지. 온갖 직업에 다양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한자리에 모여서 하늘로 펑펑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며 아, 크다, 예쁘다, 내일도 다시 힘내야겠다, 생각을 하고, 내년에도 또 보러 오자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불꽃축제의 좋은 점이라고."
  매사에 엉성하기 짝이 없고 거친 도도로키가 갑자기 섬세한 말을 하는 바람에 야오야기 일당은 살짝 당황했다.
  "뭔지 몰라도 좋은 말을 하네요, 록키." 모리타가 근질근질한 듯 몸을 꼼지락거렸다.
  "더 좋은 말을 해주지." 도도로키가 콧구멍을 벌렁거린다. "불꽃놀이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이 보는 거잖아.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어쩌면 다른 곳에서 옛 친구가 같은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아? 아마 말이지, 그런 때는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같은 생각?" 야오야기는 무심코 반문했다.
  "추억이란 건 대부분 비슷한 계기로 부활하는 거야. 내가 떠올리고 있으면 상대도 떠올리고 있지."



[골든 슬럼버]중에서, 이사카 코타로, 김소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총리 암살범 누명을 쓰고 하루아침에 - 실은 그보다 더 짧은 시간내에 ^^ - 현상수배범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로 한줄요약이 가능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보기에는 녹록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총리 암살이라는 사건을 가지고 일단 "사건의 시작"과 "사건의 시청자"로 도입부를 장식한 작가는 특이하게도 3부에 "사건 20년 뒤"를 배치시켜 아 도대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길래 이런 식의 해석과 후일담이 있는 것일까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 5부에가서 "사건 석 달 뒤"로 큰 흐름 이야기에 흠뻑빠졌던 독자를 건저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짜임새 있는 구성과 흥미를 끄는 - 시큐리티 포드 같은 - 여러 설정,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 소설에서 늘 볼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밑줄을 긋게 만들고 싶은 대화들이 넘쳐나는 작품이라 꽤 분량이 있는 소설이었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초반부 여기 저기 툭툭 던져 놓았던 작은 것들이 후반부에 가면서 의미있게 엮이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너무 작위적인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맨 마지막 장의 깔끔한 처리를 보면서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게 이사카 코타로의 최고는 언제나 [칠드런]이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이사카 코타로의 최고라고 꼽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 이렇게 멋진 작품을 썼으니 다음 작품은 또 얼마나 대단하려나 하는 기대를 갖게한 훌륭한 소설로 적극 추천합니다.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번역본 표지 멋지죠~
p.s. 위 밑줄을 보다가 뜬금없이(아니 자연스럽게 ^^) 생각난 장면~ 시집갔던 요츠바가 딸을 데려와서..(퍽)
출처는 [요츠바랑] 3권 마지막화 "불꽃놀이 대회!"입니다~
by delius | 2008/10/19 00:32 | underline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밑줄]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
  "무솔리니는 최후에 애인인 클라라와 함께 총살을 당하고, 시체는 광장에 공개되었다는 모양이야."
  "어머나!"
  "군중이 그 시체를 향해 침을 뱉고 매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체를 거꾸로 매달게 되었는데 그러자 클라라의 치마가 뒤집혔지."
  "어머나!"
  "군중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대. 죽여준다, 속옷이 훤히 다 보인다, 하며 흥분했겠지. 어느 시대건 그러게 마련이지 남자들이란. 아니 여자들도 그랬겠지.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치마를 올려주고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서 뒤집히지 않도록 해줬대."
  "어머나!" 나는 그때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을 상상하고는 그 담력에 숨이 막혔다. 주위에서는 틀림없이 무슨 짓이냐면서 성을 냈겠지. 무섭지 않았을까? 네놈은 저 여자를 편드는 거냐, 하며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른다 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대단하지."미츠요씨는 소중한 물건에 숨을 불어넣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사실 나는 늘, 최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사람들이 날뛰고 소란 피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최소한 있지, 뒤집힌 치마 정도는 바로잡아줄 줄 아는, 뭐 그게 무리라면 치마를 바로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해.
  "미츠요씨라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얼마전에 시오리 씨네 집에 갔을 때, 시오리 씨랑 준야 씨야말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치마를?"
  "커다란 홍수는 막을 수 없다 해도, 그래도 그 속에서 소중한 것은 잊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두 사람으로 보였습니다요." 미츠요 씨는 우스갯소린지 말꼬리에 높임말을 썼다.



[마왕], 이사카 고타로, 김소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6




이사카 고타로 작품처럼 안보이다가도 결국은 이사카 고타로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하는 결론으로 끝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전에 본 인터뷰 기사를 보고 상당히 정치성이 짙은 작품인가? 하고 오해했는데 그런쪽 보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에 가까운 소설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이 소설에서도 저렇게 살았으면/살아야지.. 하는 맘을 들게 하는 캐릭터(준야)가 하나 나오는데 위에 밑줄 친 부분은 그런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옮겨봤습니다. 이사카 고타로 팬들이라면 좋아하시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변죽만 울려놓고 싱겁게 맺는 결말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초능력자와 정치인의 본격적인 전쟁([X맨]같은)을 기대하신 분은 잠깐 읽기를 머뭇거리시기 바랍니다!




p.s. 원서표지
by delius | 2007/05/03 23:32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7)
사신 치바 | 이사카 고타로
[책을 읽고 나서]


이사카 코타로의 [사신 치바]는 정직한 제목답게 '죽음의 신'[死神]인 '치바'가 인간세계에서 자신의 업무(사람을 죽일지 살릴지 관찰해서 판단하는 일)를 하면서 겪게되는 에피소드 6개를 묶어 놓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그의 작품으로는 작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칠드런]과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는데, 각 단편을 떼어놓아도, 하나의 연작소설로 묶어서 전체를 봐도 좋은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점과 본격 추리물은 아니지만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맛보고 싶은 긴장감이나 수수께끼 풀기의 즐거움을 준다는 면에서 무척 닮아있다.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사신의 이미지는 긴 낫을 들고 검은 두건을 쓴, 얼굴은 보이지 않거나 해골모양이거나 검은 옷을 입고 소매에 팔을 감춘 저승사자인데 반해서 이사카 코타로가 그리는 죽음의 신은 그 때 그 때 죽을 대상에 대한 관찰에 편한 인물로 바꿔서 등장하며, 음악을 좋아하고, 비를 몰고 다니며, 인간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엉뚱하고 고지식한 질문을 던지는 특이한 캐릭터이다. 최근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일본 소설들은 하나 같이 재미있고 매력적인 캐릭터(치바는 [칠드런]에서 진나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는 주인공이다)와 소소한 듯 하지만 의미를 담고 있는 일상에 대한 관찰,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 이야기 장치들을 담고 있는데 이런 면에서 볼 때 [사신 치바]는 그런 소설들의 모범 사례라고 할 만하다.


6편 모두 알차고 재미있지만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연애 상담사 치바"를, 추리소설 팬이라면 [쥐덫]을 떠올리는 구성으로도 우선 흥미를 끄는 "산장 살인사건"에 먼저 눈길이 갈 것 같다. [칠드런] 이후 이사카 코타로의 다른 작품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최근 출간된 3편의 다른 작품에서 어느 것을 먼저 읽어야 할까 하고 행복한 고민을 할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최근작인 [사신 치바]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 내용 만큼이나 책 만듬새 또한 훌륭하다.


[서지정보]


제목 : 사신 치바
원제 : 死神の精度 (2005)
지은이 : 이사카 고타로 [伊坂幸太郎]
옮긴이 : 김소영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발간일 : 2006년 05월
분량 : 343쪽
값 : 10,000원


p.s. 원서 표지. 국내번역본도 좋은 느낌


p.s. 광고에도 나와있지만 덧붙이자면 [사신 치바]는 2005년 하반기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지만 6번 후보에 올라 드디어 나오키상을 받게 된 히가시노 케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에 밀렸다. :-)


p.s. 찾아보니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와일드 소울](가키네 료스케)이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日本推理作家協会賞)을 받을 때 [사신 치바]는 [올 요미모노 オール 讀物] 2004년 12월호에 게재한 단편(책에 실린 첫번째 단편)으로 단편부분상을 받았네요~
by delius | 2006/06/21 20:50 | book | 트랙백(2)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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