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김난주
2010/03/01   [밑줄] 범죄의 트릭은 마술과는 달라 [2]
2010/02/22   [밑줄]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4]
2009/10/20   [밑줄] 안녕. 너희들과는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 무식한 나를 용서해다오 [2]
2009/03/07   내 남자 | 사쿠라바 가즈키 [8]
2008/05/01   [밑줄] e를 π와 i를 곱한 수로 거듭제곱하여 1을 더하면 0이 된다 [9]
2007/07/20   [밑줄] 그날은 구름이 잔뜩 꼈다 [4]
[밑줄] 범죄의 트릭은 마술과는 달라
"우쓰미 양,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물리는 마술이 아니야."
"하지만 교수님은 지금까지 마술 같은 트릭을 몇 번이나 해결하셨잖아요?"
"범죄의 트릭은 마술과는 달라. 그 차이를 아나?"
고개 젓는 가오루를 보고서 유가와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양쪽 모두 근거는 있어. 다만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지. 마술은 연기가 끝나는 동시에 관객이 근거를 파헤칠 기회도 없어져. 그런데 범죄의 트릭은 그 현장을 수사진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조사할 수 있어. 무슨 장치가 있다면 반드시 흔적이 남지. 흔적을 완벽하게 없애는 것이 범죄트릭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야."



[성녀의 구제] 중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09




소설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읽기 시작해서 유가와 교수가 나오는 것도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구사나기 형사 = 키타무라 카즈키, 우쓰미 형사 = 시바사키 코우, 유가와 교수 = 후쿠야마 마사하루... 모두 드라마와 영화의 배역들을 떠올리며 소설을 읽다보니 더 재미있더군요.(소설 중간에 우쓰미 형사가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노래를 듣는 내용도 있습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답게 책을 손에 들고 끝까지 읽어 나가게 만드는 힘은 여전합니다. 갈릴레오 시리즈와 비교하면 우쓰미 형사의 활약이 좀 더 돋보이는 편이고 트릭이 드러나기 까지의 과정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다만 [용의자 X의 헌신]을 넘어설만큼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도 많이 보이는데, 원인으로는 뭐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긴 하겠지만 피해자가 좀 특별한 사람이라는 점과 범인과의 긴장이 구사나기 형사의 애정으로 많이 희석된 것을 들 수 있겠네요.(구사나기의 애정이 꽃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범죄가 완전범죄로 마무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그 전까지는 몰랐지만 이후 작품들을 읽다보니 [용의자 X의 헌신]이 참 탄탄한 작품이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갈릴레오 시리즈 팬들이라면 당연히 재미있어하실 만한 작품으로 영상화 되었으면 좋겠네요~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by delius | 2010/03/01 10:19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2)
[밑줄]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마시면서 한숨 돌리고는 집필을 시작했다. 요즘은 주로 코믹 소설을 쓰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편집자에게 "우리나라에서는 코믹이 팔리지 않는다. 미스터리로 전향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찬밥 취급 당하는 신세였다. 그런데 상을 받고 소설이 팔리기 시작하자 독자들도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꿨는지 주문이 쇄도한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에는 단독 행동을 좋아하는 괴팍한 사람이란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게 지금은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다. 코믹 소설은 깨어 있는 냉철한 시각이 없으면 쓸 수 없다. 현실주의자가 아니면 인간 세상의 해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기야 문학적인 소양이 없는 탓에 늘 악전고투하고 있다. 마감 날이 가까운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과장이 아니라 정말 사라지고 싶어진다. ...



"아내와 현미밥" 중에서, [오 해피데이], 오쿠다 히데오, 김난주 옮김, 재인, 2009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 집에 놀러 오렴"이었지만 마지막 단편의 주인공이 오쿠다 히데오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아 밑줄을 그어봤습니다. 읽을 때 마다 놀라지만 어쩜 이렇게 매끈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 요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버스에서 읽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푸핫하고 웃어버린 경험도 오랜만이구요. :-) []이나 [마돈나]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가 다채로워서 더 좋았습니다. 오쿠다 히데오 팬이라면 당연히 재미있어하실 작품~




p.s. 번역본이랑 원서표지. 번역본 표지만 보면 아이들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 6편 단편 모두 부부의 이야기에요~
by delius | 2010/02/22 00:40 | underline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밑줄] 안녕. 너희들과는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 무식한 나를 용서해다오
  ... 다음 날, 나는 강의가 끝난 후 도서관에 가서 영화에 관계된 책이 꽂혀 있는 서가 앞을 어슬렁거리며 한 시간을 보냈다. 영화 작품론이 대부분이었다. 필름이나 영사기, 영사 기사등의 잡학을 다룬 책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로마의 휴일]에 관한 책이나 읽어볼까하고 몇 권 들춰보았지만 [로마의 휴일]이란 제목이 실려 있는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나는 물론 내 주위 사람들도 아무도 보지 않았을 영화가 주로 다뤄져 있고, 게다가 '성역'이니 '에토스'니 '르상티망'이니 하는, 뭔가 뭔지 모를 용어로 설명되어 있었다.
  '안녕. 너희들과는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 무식한 나를 용서해다오.'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서가를 떠나 도서관에서 나왔다. 시간이 조금 남아, 생협 책방에 들어가 잠시 서가를 들여다보았지만, 내가 찾는 책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



"사랑의 샘" 중에서, [영화처럼], 가네시로 가즈키, 김난주 옮김, 북폴리오, 2008




5권의 단편이 모두 재미있지만 마지막 단편인 "사랑의 샘"에서 한 부분 옮겨보았습니다.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도 잘 나타난 부분이라서요. 주인공의 대사가 [GO] 같아요. [GO]에보면 주인공이 여자친구랑 미술관 가서 달리 그림을 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의 표현도 위의 밑줄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 할아버지와 사별한 지 1년이 되는 할머니를 위해 가족들이 합심해서 할아버지와 보았던 [로마의 휴일] 상영회를 구민회관에서 여는 이야기인데, 이 [로마의 휴일] 상영회가 각기 독립된 이야기로 읽히는 다섯 편의 이야기를 느슨하게 연결시켜주는 고리역할을 하기 때문에 작품의 중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네시로 가즈키 이전 작품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이라면 역시나 즐겁게 읽을 실 수 있을것 같아요. 참고로 아래 각 단편의 제목이 된 영화를 정리해봤습니다.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마지막 사진은 원서의 내지 사진이라네요.[출처] 멋져요~
p.s. 르상티망이 뭔지 찾아봤어요. 어려운 단어더군요 -_-
by delius | 2009/10/20 13:37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2)
내 남자 | 사쿠라바 가즈키
[책을 읽고 나서]


표지에 "해서는 안 될 가장 처절하고 슬픈 사랑.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달콤하지만 죄의 향기가 나는 소설"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금기시 되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딱 떠오르는 것은 남매간의 사랑? 정도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1장인 "2008년 06월 하나와 낡은 카메라"를 읽기 시작합니다. 비오는 날 "너무 오랫동안 함께 지낸 탓"에 지금까지 대화는 별로 하지 않고 "집요한 애정"만 남은 나이든 남자와 만난 주인공 하나는 약혼자 요시로와의 약속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합니다. 음 불륜의 상대와 결혼 전날 만나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인가? 하지만 이 둘은 약혼자와 만나서 인사를 나눕니다. 바로 이어지는 담담한 이야기. "구사리노 준고는 내 양아버지다. 그가 나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역시 제 상상력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_-


처음에 목차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를 거꾸로 배열한다고 해서 뭐 그렇게 큰 효과가 있으려나.. 하고 생각했지만 2008년, 2005년... 1993년까지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화자를 다르게 배열한 소설의 구성은 이 소설이 주는 묘한 느낌과 잘 어울리고,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뭔가 현재 이야기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후반부에 가면서 조금씩 풀려가고 선명해지기 때문에 끝까지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합니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다시 1장을 읽어보았는데 왜 제목이 낡은 카메라인지 알고 보게 되니 느낌이 새롭더라구요. 이야기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호불호가 당연히 갈릴 것 같고, 짙은 성애묘사는 나오지 않지만 끈적끈적함과 희미한 비린내가 나는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자신만의 체취가 강한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아서 전혀 맘에 들어하지 않을 독자도 많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몇몇 부분의 묘사에서는 "아 이런 식의 묘사로도 이런 감정을 표현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들게 하면서, 눈으로는 읽기는 하지만 본능적으로 조금 책에서 거리를 두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많지만 앞부분에 나오는 한 대목을 옮겨 적어 봅니다.


  ... 같은 소파에 앉아 있는 요시로와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있었다. 어른은 좀 무리겠지만 아이 하나 정도는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게 벌어져 있다. 요시로는 온화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하고 나는 결혼을 결심했을 때 생각했다.
  이런 남자와 함께라면, 절망적으로 뒤얽히지 않고,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하지도 않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불행의 그림자라고는 한 점도 없는 그의 젊음에 안도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능하다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천천히 늙어가고 조금씩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그러니까 평범하면서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잔인했던 과거를 다른 색으로 칠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끈질기게 살아남으려고 했지만, 지금 이렇게, 이렇게 밝은 장소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내가 나이도록 하는 그 부분 - 본 적도 만져 본 적도 없는 혼의 부분이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썩어들어, 끝내는 죽을 듯한 느낌도 들었다. ...





[서지정보]


제목 : 내 남자
원제 : 私の男 (2008)
지은이 : 사쿠라바 가즈키[櫻庭一樹]
옮긴이 : 김난주
출판사 : 재인
발간일 : 2008년 12월
분량 : 456쪽
값 : 13,800원


p.s. 이 책에 대한 나오키상 수상 심사위원들의 호불호 모습을 번역기의 힘을 빌려 옮겨봅니다. 이 책을 좋아한 쪽이 좀 더 많았나 봅니다~ : )


이노우에 히사시 : 작가는 아마도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왕] 구조를 빌려 시간을 역행 시켜 질척질척한 이야기를 훌륭한 비극으로 소생시켰다. (作者は(たぶん)ギリシャ悲劇の「オイデプス王」の構造をかりて時間を遡行させてどろどろ劇をりっぱな悲劇に蘇生させた。)


하야시 마리코 : 나는 이 작품을 아무래도 좋아하게 될 수 없었다. 작가가 아마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주려 하고 있는 혐오감이 나의 경우 스트레이트하게 효과가 있었다. (私はこの作品をどうしても好きになれなかった。 作者がおそらく意図的に読者に与えようとしている嫌悪感が私の場合ストレートに効いたということであろう。)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by delius | 2009/03/07 09:16 | book | 트랙백 | 핑백(1) | 덧글(8)
[밑줄] e를 π와 i를 곱한 수로 거듭제곱하여 1을 더하면 0이 된다
  eπi+1=0


  eπi 를 곱한 수로 거듭제곱하여 1을 더하면 0이 된다.
  나는 다시 한 번 박사의 메모를 쳐다보았다. 한없이 순환하는 수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하늘에서 πe곁으로 내려와 수줍은 많은 i 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오일러의 공식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유성의 빛이었다. 어둠의 동굴에 새겨진 시 한 줄이었다. 거기에 담긴 아름다움에 감동하면서 나는 메모지를 다시 정액권 지갑에 집어넣었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문득 뒤돌아보았지만 수학 코너는 여전히 한산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숨쉬고 있었다. ...




[박사가 사랑한 수식] 중에서, 오가와 요코, 김난주 옮김, 이레, 2004




최근에 전산을 전공하신 윗분(이 분도 박사)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대화의 주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야 전체적인 줄거리와 인상적인 대화, 우애수 정도만 기억이 났는데 이 분은 전공이 전공이신지라 오일러 공식을 잘 표현한 것을 말씀 하시더라구요. 강의실에 들어온 수학교수님이 이 공식을 쓰고 한참을 보다가 "아름답지 않냐?"고 동의를 구했던 기억이 나신다면서요. ^^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했습니다. ;-) 옮겨 적으면서 다시 봐도 모를 이야기지만 (   ..) 그래도 감동은 변하지 않네요.




p.s.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학 코너처럼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숨쉬고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분명 넘치도록 있다는 생각에 급 우울해졌어요. ㅠㅠ


p.s. 한없이 순환하는 e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엇지님의 자연수 e 이야기도 참조해주세요~ (하지만 읽어도 잘 이해가... 흑흑)
by delius | 2008/05/01 14:01 | underline | 트랙백(1) | 덧글(9)
[밑줄] 그날은 구름이 잔뜩 꼈다
... 거리는 묘한 적막에 싸여 있었다. 해변에도 사람은 그림자도 없고 갈매기만 눈에 띄었다. 레스토랑의 테라스는 대낮에도 텅텅 비어 있었다. 성벽 매표소, 보트 대여점, 빙수가게, 관광 택시 회사, 사람들은 어디서나 남아도는 시간을 어쩌지 못해 멍하니 있었다. 비수기가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일찌감치 장사를 접은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한산한 해안 길에 내리쬐는 햇빛이 유난히 눈부시게 느껴졌다.
  그날은 구름이 잔뜩 꼈다. 낮인데도 새벽 같았다. 태양은 보이지 않고 푸르스름한 회색 구름이 겹겹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바다도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기분이 음산해지는 색이었다. 결코 아름답지도 않은데 순수하고, 풍경 전체를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마치 숨을 쉬듯 꿈틀 거렸다. 수평선 언저리에만 길쭉한 띠 같은 하늘이 간신히 보였지만, 그것조차 밀려오는 구름의 무게에 짓눌려 버릴 듯했다. 바위에 앉아있는 갈매기도 불안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날아오르기를 주저하는 듯했다.
  우리는 유람선 갑판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 갑판에 넘쳐나도록 타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도 사라지고 없었다. 물건을 사러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인 듯한 보건소 관리인이 선실 창틀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커피 파는 아저씨는 카운터에 나와 뱃머리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 외에는 달리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유람선을 탄 듯한 관광객 몇 명이 있는 정도였다. ...



[호텔 아이리스] 중에서, 오가와 요코, 김난주 옮김, 이레, 2007




어머니와 함께 관광지에 있는 호텔에서 카운터 일을 보고 있는 17살 소녀와 가까이에 있는 섬에 혼자 살고 있는 아버지뻘 되는 한 번역가의 사도-마조히즘 방식의 사랑이야기로 한 줄 요약할 수 있는 소설이지만, 정작 눈에 들어온 것은 위와 같은 무심하고, 조용한, 그래서 나른하고 불안한 느낌이 드는 풍경의 묘사였습니다. 유람선 갑판에서 바라본 풍경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마치 내 자신이 그곳에서 음산해지는 하늘 색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오가와 요코 작품은 - 이 작품만큼이나 분위기가 만만치 않은 - 소설집 [임신 캘린더]와 [미나의 행진] 밖에 읽지 않았는데, 만약 [미나의 행진]이나 [박사가 사랑한 수식]만 읽으신 분이라면 화들짝 놀라실 것 같다는 생각드네요. SM이나 성애에 대한 묘사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다른 책들이 있으니 - 예를 들면 와타나베 준이치의 [샤토 루즈]나 무라카미 류의 여러 작품 - 오가와 요코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본다는 생각으로 읽어보시는게 어떨까 합니다.




p.s. 원서와 번역본 표지. 흠..
by delius | 2007/07/20 23:13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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