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고미숙
2008/04/11   [밑줄] 정말 버리기 어려운 건 [2]
2004/09/09   [밑줄] 예술성과 인간성
[밑줄] 정말 버리기 어려운 건
... 돈과 지위, 명성 따위를 버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정말 버리기 어려운 건 무의식에 새겨진 자의식이다. 그것은 때로는 교만과 욕심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과잉겸손과 나약함으로, 때로는 감상과 무력함으로, 그야말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관계와 활동을 가로막는다. 그런 까닭에 뚜렷한 척도나 고정된 틀이 있을 수 없다. 사람마다 다를 뿐 아니라 상황마다 늘 다르게 작동한다. 예를 들어 상호배려라는 덕목을 생각해보자. 누구나 이것이 공동체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럼 상호배려는 희생과 어떻게 다른다? 포용력도 마찬가지다. 포용이란 타인을 무조건 긍정해 주는 것인가? 아니먄 타인을 자기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또 이런 문제는 어떤가? 왜 나와 견해가 다르면 화가 날까? 나를 괴롭히거나 이해관계가 어긋날 때 화가 나는 건 충분히 이해할 법하다. 그런데 서로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의논을 주고받을 때도 나와 견해가 다르면 왜 상대방에게 화가 날까? 여기에 작동한는 건 어떤 종류의 욕망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윤리적 덕목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차이, 관계의 뒤얽힘을 고려하지 않은 추상적인 공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직접 사람들 사이에 부딪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문제들이 수도 없이 출몰한다. 그렇게 때문에 코뮌의 윤리는 자의식이 적나라하게 충돌하는 현장에서 새롭게 구축되어야 한다. 진정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가? 혹은 자신을 버릴 수 있는가? [중론(中論)]의 저자 나가르주나의 표현을 빌리면, 자아의 공(空)함을 볼 수 있는가? 코뮌적 윤리란 바로 이 물음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중에서, 고미숙, 휴머니스트, 2004




선물하려고 주문한 책이 도착해서 다시 훓어보다가 눈에 띈 구절. 처음 읽었던 책은 1쇄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 나온 책은 2006년에 찍은 4쇄네요. 현재도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면 최신 내용을 담은 개정판을 기대해 봄직도 한데(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도 좋지만 빌딩 구하고, 요리당번 정하는 등의 실제 경험담이 생생해서 무척 좋았었거든요~), 위의 밑줄 그은 부분 같은 내용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p.s. 표지가 이쁘죠. ^.^
by delius | 2008/04/11 01:20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2)
[밑줄] 예술성과 인간성
| 훌륭한 작품을 써내는 문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간성이나 인간관계가 좋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분리되었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여기서도 그런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지적으로 훌륭한 것과 일상을 잘 공유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 아닐까요? |


먼저 예술가 창작 집단과 지식인 집단, 학문 생산 집단의 일상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세미나나 학문은 지구력이 필요한 거잖아요.
  일상을 공유하는 문제는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육의 문제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연구실 활동을 해보면, 남을 배려하고 관계를 만드는 능력을 훈련받지 못한 것이 교육의 한계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더라구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 열심히 하면 되고, 좋은 대학 다니면서 가족관계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남한테 칭찬받고 배려를 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학벌이 좋을수록 더 그렇죠. 천성적으로 타고나지 않는 한, 훈련이 안 되기 때문에 남을 배려해야 하는 관계에 쉽게 적응을 못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연구실에 들어오면 불면해하는 게 역력하고 금방 표시가 나요. 그래서 일상을 공유한다는 게 놀라운 일입니다. 속이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속여봐야 금방 몸으로 아니까.


| 결국 일상의 공유는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을까요? |


그렇죠. 문제는 낡은 습속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인위적인 이념이 아니라 생활 안에서 그것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얼마나 삶의 능력을 키워주는가가 중요하죠. 연구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가, 그것이 지금 제가 '일상'이라는 문제로 고민하는 점입니다.
  앞서 얘기한 학연이나 성차별은 노력 없이도 벗어날 수 있는데, 정작 그 다음부터가 싸움의 시작이죠. 그 다음부터 개인의 능력들, 신체적인 능력이나 습관 등 여러 가지 것들을 가지고 스스로 변신해 나가지 않으면 관계가 고착되거나 계속 어그러집니다. 처음에 좋았던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건 없어요. 만약 계속 이어진다면 그건 아주 자족적인 서클이 된다는 얘기지요. 그때부터 일상의 혁명, 일상과의 혁명이 시작되는 겁니다.


고미숙과 조희정의 인터뷰 "우정의 교육과 유목적 지식 중에서"



[인텔리겐차 : '지금, 여기' 우리 지식인의 새로운 길찾기], 퍼슨웹 기획/집필, 장석만·고미숙·윤해동·김동춘, 푸른역사, 2002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꾸리고 있는 고미숙의 연구실 운영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다. 나도 매번 질문에 부딫일때 마다 딱히 어떻게 답해야하나... 생각했던 것인데 의외로 대답이 명쾌해서 밑줄을 그었다. 역시 문제는 자신의 자각과 노력! : )
by delius | 2004/09/09 23:19 | underline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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