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플레이어]와 샤콘느
1996. 06. 16 03:23 글출처 : 소리모꼬지 [mokogy]


[바이올린 플레이어] & 샤콘느


감독 : 찰리 반담
주연 : 리세르 베르
연주 : 기돈 크레머


클래식 음악에 있어서 "BACH"는 이름 그대로의 시냇물이 아니라 바다라는 말이 있다.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 음악시간까지 외어 왔던 "바/헤/하/모/베" 라는 고전파 음악가의 이름 중에서 바흐는 항상 음악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고, 베토벤의 운명이나 모짜르트의 오페라, 레퀴엠과 같은 뚜렷한 히트곡(?)이 없음에도(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나 고전음악의 최정상에 있다고 여겨졌다. 어쩌다가 클래식음악을 좋아하게 되면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나, 유명한 오르간/피아노곡들, 또 무반주 첼로 소나타 등을 듣게 되면서도 그런 생각에는 변화가 없어서, 여전히 3B에는 바흐나 브람스 대신 브루크너가 들어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말로만 듣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듣고, 정확히는 "파르티타 2번 中 5.샤콘느"를 듣고 그런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더니... 단 한마디의 말이나 세심한 행동으로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바흐를사랑하게 되었다.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바이올린 플레이어라는 점)는 한 바이올린 연주자의 자아발견을 위한 여러가지 시도와 노력을 담고 있는 영화다. 영화의 곳곳에서 흔히 말하는 예술가의 고뇌가 느껴진다. 또 지하철역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점은 흔히 말하는 예술의 향유자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듯하다. 지루하지 않은 촬영, 편집 등도 눈에 띄고(감독이 원래 촬영기사 출신이라고 한다), 바이올린 전문주자도 아니면서 숙련된 바이올린 솜씨를 펼치는 주인공의 연기(음악영화에서 발견되는 핵심적인 문제 중에 하나는 바로 연주문제 - 얼마나 실제연주와 가깝게 연기하는가 - 인데, 여기서는 연주가를 다룬 영화에서 최상의 연주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스트윅의 마녀들]에서 잭 니콜슨이 보여준 광폭한 바이올린 연주가 가장 실연 같았다)는 이 영화를 어설픈 음악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다. 물론 구성이 조금 탄탄치 못하다던가, 지하철역에서 연주하는 식이 대중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냐, 또 프랑스영화 특유(?)의 지루함이 있는 등 단점도 발견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이나 연기나, 기술적인 여러가지면에서 발견되는 장점이나 단점은 영화의 "음악"에 묻혀 버리고 만다. 귀에 익은 베토벤, 멘델스존(?), 베버의 협주곡과 소나타가 계속 이어져 나오며 마지막 장면에서는 바흐의 샤콘느가 들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지하철역의 깡패에 의해 바이올린이 부서지고 난후, 그는 자신이 연주한 샤콘느 연주 테입을 틀어 놓고 바이올린 없이 손과 입으로 연주한다. 마지막 장면. 늦은 밤, 파리 하수도에 있는 그에게 친구가 바이올린을 가져다준다. 그는 서서히 음을 조율하면 간단하게 연주를 시작한다. 바이올린을 내려놓을 때 한 노인이 조금만 더 연주를 해달라고 말한다. 그는 말없이 다시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리고 조용히 샤콘느를 연주한다. 하수도내의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순간순간 스치고 어두운 하수도와 슬프도록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흐른다. 약 15분 동안의 연주는 끝나고, 멀리서 들리는 듯한 지하철 소음과 함께 자 막이 올라간다.




가요 중에는 리듬이나 멜로디가 때 먼저 느껴지는 노래와 가사가 가슴에 닿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영화도 여기 적용시킨다면, [바이올린 플레이어]에는 영화로서는 독특하게 "영화"보다는 "음악"이 먼저 느껴지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브람스가 한 샤콘느에 대한 글을 옮겨 본다. 샤콘느에 대한모든 이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지극한 찬사라고 여겨진다.


"샤콘느는 나에게 있어 가장 놀랍고 가장 불가해한 작품의 하나다. 한 단의 보표로 하나의 작은 악기를 위하여 이 인물은 가장 심원한 사상과 가장 힘찬 감정의 모든 세계를 써서 나타냈다. 가령 내 자신이 영감을 얻어서 이 곡을 만들었다고 상상하면, 엄청난 흥분과 감동때문에 틀림없이 미쳐버렸을 것이다. 곁에 바이올리니스트가 없다면 그것을 다만 마음 속에서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훌륭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요하네스 브람스, [바하] 중 "음악과 문학과가 본 바하상(像)"에서



조금 긴 p.s.


클래식음악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비용에 있다는 생각이다. 연주회 티켓값에서부터 CD니 LD니 하는 - 음질의 차이 때문이라도 CDP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 소프트웨어의 가격 이르기까지...(물론 다른 음악장르도 마찬가지이지만) 또 바흐의 곡들은 대개 예외없이 2CD나 3CD에 녹음되는 긴 곡들이라서 그런 부담은 크다. 하지만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예외적이다. 필립스사의 듀오(DUO)시리즈와 도이치 그라머폰의 더블(DOUBLE)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2장을 한장 가격으로"라는 기치 아래 이들은 절반가격으로 판매하는데, 음질이나 연주자의 수준은 가격이 미안할 정도로 양호하다.(메트로 미도파의 지하 파워 스테이션의 경우 대개 10000원 - 11000원정도면 구입가능하다) 필립스사에서는 그뤼미오의 연주로 나와있고, 도이치 그라머폰에서는 헨릭 셰링의 연주가 나와 있다.(두 연주가 모두 이 곡에 있어서 빼어난 연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뤼미오의 연주가 최고라고 생각된다) 물론 [바이올린 플레이어] 영화음악 사운드 트랙도 있고, 따로 기돈 크레머의 전곡 연주도 있다.(하지만 영화를 못보고 사운드 트랙만 듣는다면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외에 여러 잡지나 애호가들이 추천하는 음반으로는 나탄 밀스타인, 크리스티안 에딩거, 펄만... 등이 있다.


늦은 밤, 조금 차가운 공기, 커피, 고독, 그리고 바흐의 샤콘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다섯가지것들...




[예전 Hitel 소리모꼬지 동호회에 올렸던 글을 내발자국찾기 라는 서비스를 통해 찾았습니다.]
by delius | 2004/12/12 13:55 | music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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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도필 at 2004/12/12 23:05
샤콘느. 누구에게나 한때의 추억으로 남을 만한 곡이죠. 저도 예전에, 샤콘느도 '데 비토'나 '마르찌' 같은 연주를 좋아했지만, 나이가 더 들어선지, 이젠, 처음 접했던 세링과 그뤼미오, 특히 그뤼미오를 더 즐겨듣게 되네요. 웬지 부담이 덜한...
Commented by delius at 2004/12/13 09:13
전 처음 접한게 그뤼미오라 어쩔 수 없이 계속 좋게 생각되는 것 같아요. 역시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생각 ^^
Commented at 2007/05/04 17: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delius at 2007/05/04 19:17
이 글 쓰고 나서 다른 연주자 CD를 몇 개 더 사긴 했는데 여전히 그뤼미오 연주가 좋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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