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첫 문단 (10)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 나카노네 고만물상, 가와카미 히로미, 오유리 옮김, 은행나무, 2006




어느 날 부인이 안으로 들어선 것은 판유리벽을 통해 [장미빛 누드]를 보았기 때문이다. 코트 걸이 위에, 흔히 젊은 여자 모델의 오만한 잿빛 시선이나 광기가 번득이는 듯한 까만 눈동자와 마주칠 법한 곳에,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풍만한 알몸을 육감적으로 곱게 내뻗은 여인의 누드가 걸려 있는 것이 참 이상하다고 부인은 생각했다. 요즘은 완숙한 여인을 표현한 그림이나 사진은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젊은 여자들 모습뿐인데 말이다. 장미빛 나부(裸婦)는 아주 단조로운 색감으로 그러졌는데도 양감이 있었다. 커다란 궁둥이, 슬며시 들어올린 당당한 한쪽 무릎. 둥글게 솟아오른 젖가슴은 원(圓)에 대한 명상과, 육체와 그 육체의 쇠락에 대한 깊은 사색을 보여준다.
- '메두사의 발목', [마티스·스토리], A. S. 바이어트, 윤희기 옮김, 프레스21, 1997




나는 여기에 이렇게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여기는 내 방이고, 대략 2만 권의 책과 갈색 수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고양이 이름은 '365일의 반찬 백과'이다.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다카하시 겐이치로, 박혜성 옮김, 웅진출판, 1995




해마다, 1년에 두 번씩 '수시아(sucia)'들이 나타난다. 나, 엘리자베스, 사라, 레베카, 우스내비스, 그리고 앰버다. 세계 어느 곳에 있든 - 우리는 많이 돌아다닌다 -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어떻게든 보스턴으로 돌아와서, 하룻밤 먹고 마시고(마시는 건 내 특기다) 수다를 떤다.
- 서른 살의 다이어리, 알리사 발데스 로드리게즈, 이현정 옮김, 시공사, 2005




전 고교 교사 고사카 히토미 씨가 2월 14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향년 68세.
- 학문, 야마다 에이미, 이규원 옮김, 작가정신, 2010




마치 앉아서 춤을 추는 것만 같다. 당기고 찍고 풀고 돌리고, 왼손 오른발 왼손 오른손, 모든 것이 완벽한 순서와 리듬에 따라 진행된다. 내 손이 끈적끈적한 고무 재질로 싸인 스로틀을 뒤쪽으로 비틀때마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628파운드에 130마력까지 신제품, BMW K1200 오토바이는 마치 채찍을 맞은 경주마처럼 앞으로 돌진한다.
- 비치하우스, 제임스 패터슨 & 페테 드 종주, 이창식 옮김, 베텔스만, 2003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아줌마는 테이블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설탕 그릇을 끌어당겨 뚜껑을 열더니 '아.'하는 소리를 냈다.
- '낡은 부채', [자백], 노나미 아사, 이춘신 옮김, 서울문화사, 2011




11월의 끝무렵, 유달리 포근한 어느 날 아침 9시쯤, 페테르부르크-바르샤바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가 전속력으로 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공기는 축축하고 안개가 짙게 낀 날이었기 떄문에 이제야 겨우 날이 밝아오는 듯싶었다. 그러나 차창을 통해서는 아직 선로의 좌우 열 걸음 안팎까지 밖에는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승객들 가운데는 외국에서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리 멀지 않은 데서 탄 신분이 낮은 장사꾼들이 많았는데, 특히 그들이 많이 타고 있는 3등 객실은 훨씬 더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런 경우 흔히 그러듯이 승객들은 모두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하룻밤 사이에 부석해진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고, 뱃속까지 얼어붙은 듯이 모두 꼼짝들 않고 앉아 있었다. 어느 얼굴이나 안개처럼 창백하거나 누렇게 떠 있었다.
- 벡치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박형규 옮김, 범우사, 1992




도모요세 아키오는 언제나처럼 나른한 한낮의 졸음 속에서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었다.
- 카후를 기다리며, 하라다 마하, 오근영 옮김, 스튜디오본프리, 2007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찢겨진 솜 같은 눈송이가 허공에서 휘날리다가 목적도 없이 아무 데나 떨어지곤 했다. 길 양쪽 담장 밑에는 눈이 제법 쌓여 질척거리는 복판 길 양쪽에 마치 하얗고 넓은 장식천을 드리운 것 같았다.
- 가 1, 바진, 박난영 옮김, 황소자리, 2006




만약 당신이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펴 들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책은 불행한 사건으로 시작될뿐더러, 결말 역시 해피 엔딩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중간 행복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이 헤쳐나가야 할 일들은 행복과는 영 거리가 멀다. 바이올렛, 클로스, 그리고 서니. 보클레어 집안의 세 남매는 귀엽고 영리하며 뛰어난 재주꾼들이었지만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불행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안됐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 위험한대결-눈동자의 집, 레모니 스니켓, 한지희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2002




케셀바흐 씨는 거실 문턱에 멈칫 멈춰 선 채 비서의 팔뚝을 덥석 붙잡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 813의 비밀, 모리스 르블랑, 성귀수 옮김, 까치, 2002




스카일러와 줄리아는 주위를 살피며 빅하우스 지하 출입문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후텁지근한 공기를 헤치고 한줄기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한때 진입로였단 길에 아치 모양으로 버티고 선 늙은 떡갈나무 가지의 겨우살이가 살짝 흔들렸다.
- 암호인간 1, 존 단턴, 안진환 옮김, 이야기, 2001




5년 전 북부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 바르가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다가 그의 이웃에 사는 잔카를로 툴라(본명이 아니다)라는 사내를 만났다. 땅딸막하가 못해 뚱뚱해 보이는 몸집에 헝클어진 잿빛 머리 그리고 온통 이가 누런 잔카를로는, 자신을 모험을 좋아하는 집시 예술가 가족 사이에서 태어난 불가리아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기 가족은 전 세계를 여행했으며, 미국의 유명한 <에드 설리번 쇼>애 두 번이나 출연했고, 자신은 세인트아모리 69번지에서 벌일 공연 광고를 위해 월 스트리트에서 눈을 가린 채 지상 30층 높이에서 줄타기도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심한 치통 때문에 정신을 잃고 떨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다리가 세 군데나 부러졌다고 떠벌렸다.
- 시식시종, 우고 디폰테 지음, 피터 엘블링 영역, 서현정 옮김, 베텔스만, 2003




"안녕, 루크? 행운을 빌어!"
- 나이트메어룸2-13번 사물함, R. L. 스타인, 이창식 옮김, 시공주니어, 2001
by delius | 2011/11/27 12:21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delius.egloos.com/tb/464948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



카테고리
전체
book
biography
obituary
music
entertainment
movie
internet
tour
underline
mistyped
photo
talk
publishing
press
exhibition
bonus
최근 등록된 덧글
안녕하세요 .. 시간이 ..
by at 08/05
지식이 짧아서 잘 모르..
by 골룸 at 05/08
Rorex가 아닌 Rolex로..
by ㅇㅇ at 06/30
파리여행을 끝으로 올라..
by purejoy at 11/26
- 이요님: 네 신기한 소..
by delius at 08/31
두번째 중세박물관의 그..
by 이요 at 08/30
- 카이토님 : 감사합니다..
by delius at 07/29
오~ 감사합니다 딱 이렇..
by 카이토 at 07/25
- 잘나가는 꼬마사자님:..
by delius at 07/19
저거 콩시에르 쥬리였군..
by 잘나가는 꼬마사자 at 07/18
메모장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최근 등록된 트랙백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by 잠보니스틱스
이전블로그
2013년 09월
2013년 08월
2013년 07월
2013년 06월
2013년 05월
2013년 01월
2012년 12월
2012년 11월
2012년 10월
2012년 09월
2012년 08월
2012년 07월
2012년 06월
2012년 05월
2012년 04월
2012년 03월
2012년 02월
2012년 01월
2011년 12월
2011년 11월
2011년 10월
2011년 09월
2011년 08월
2011년 07월
2011년 06월
2011년 05월
2011년 04월
2011년 03월
2011년 02월
2011년 01월
2010년 12월
2010년 11월
2010년 10월
2010년 09월
2010년 08월
2010년 07월
2010년 06월
2010년 05월
2010년 04월
2010년 03월
2010년 02월
2010년 01월
2009년 12월
2009년 11월
2009년 10월
2009년 09월
2009년 08월
2009년 07월
2009년 06월
2009년 05월
2009년 04월
2009년 03월
2009년 02월
2009년 01월
2008년 12월
2008년 11월
2008년 10월
2008년 09월
2008년 08월
2008년 07월
2008년 06월
2008년 05월
2008년 04월
2008년 03월
2008년 02월
2008년 01월
2007년 12월
2007년 11월
2007년 10월
2007년 09월
2007년 08월
2007년 07월
2007년 06월
2007년 05월
2007년 04월
2007년 03월
2007년 02월
2007년 01월
2006년 12월
2006년 11월
2006년 10월
2006년 09월
2006년 08월
2006년 07월
2006년 06월
2006년 05월
2006년 04월
2006년 03월
2006년 02월
2006년 01월
2005년 12월
2005년 11월
2005년 10월
2005년 09월
2005년 08월
2005년 07월
2005년 06월
2005년 05월
2005년 04월
2005년 03월
2005년 02월
2005년 01월
2004년 12월
2004년 11월
2004년 10월
2004년 09월
2004년 08월
2004년 07월
이글루링크
erehwon.LAB
修身齊家萬事成
여성주의 코칭 발전소!
평범한 블로그
GROOVY FREAK
[SCENE-N-MIND]
log
SabBatH
까모의 룰루랄라~
잠보니스틱스
鐵木居士의 月印千江
河伊兒의 고물상
대답이 있다.그냥 시체는..
Extey Style
그냥그냥
들풀.넷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HIBERNATE IN LIBRARY
단순하고 소박하게
잉여 인간을 벗어나다 (..
추리소설 1000권 읽기! ha..
Closed
.
Love calling Earth : ..
Null Model
은하수를 여행하는 스트..
웅이네 방
일본에 먹으러가자.
秘するが花
Trivia
WALLFLOWER
Crooked House (..
the world is naked.
디지털을 말한다 by oojoo
한일 아이돌 뒷담화 온..
♠후리지아 향기처럼♠
v e r . b e t a
The Phantasist
卷き戾しの街
뭐 별 거 안 하는 블로그..
사는 이야기~
Pepe
Schubertiade
자유분방 / 殺身成戱
어스름한 달빛에 취해
§ 응!! §
차이컬쳐
이제는 없는 공주를 위하여
나르키
주로, 텍스트의 공간
isao의 IT,게임번역소
산하의 썸데이서울
사색의풍경
다이나믹 부산
witched little tiny hut
Dj ccuri의 림보니카니아
blogger jely
Sion, In The 3rd Dim..
누구의 것도 아닌 집
漁夫의 'Questo e quell..
Neverland

http://studioxga.net..
무명
Surviving in Australia
중급 애호가의 이런저런..
Lifelog
kumakuma memory ..
starla's trash can 혹..
Fithelestre in an Egloo
Life is hard when you..
골룸의 골방
다시 숲
てるてるx小女
.
無爲徒食
maniacs
AURA's Showcase
Photo archive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ad hoc record
평범한 김차장의 좌충우..
a quarantine station
Cafe Greco
Nomadic-land
D's Notizbuch
리치 커피 올드 패션의 ..
All about IT Trends
이곳은 雨柳堂입니다.
484
외계인 교차점
★ Memo Log !
LoLieL the Black On..
naoya.egloos.com
푸르미 세상
블로그스팟
담 배 가 없 다
drifter
메르카토르
그리고 나의 남은 이야기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Bistro Fishbowl
하이드
white table
아뿔싸! 지구에서 살다...
딸기밭은 영원히!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ㅁ-
묵색 혹성
한글이 꿈틀
モモのカンヅメ
쭈르르'스 이글루
손안의책 편집부입니다
[칼럼니스트]
날개를 펴는 곳
변천 Komix
이전
品절
허클베리 핀의 모험
woody's film review
bono
알라딘의 Coool~하게..
꼬냉이 야옹 야옹 *^o^*
33.GONY
두근두근 라이프
dayBYday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
Seek Your Daimonion
Kindred Spirits - 빨..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Dust's house
conan's lazy blogging
레스톨 블로그
더러운 물 속에서
아돌군의 잡설들.
로망의 연금술사
행복한 짐승
: 숨어있기 좋은 방 :
Black or White
High enough!
리비에라를 쏴라
주 모씨의 이바구별곡
쿤데라 할아버지도 못이룬..
ms.b.adler's-I.T.U..
동남아시아 11개국 Chan..
모리제의 일본생활
역설의 제 12 우주
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Nanna's memory
레인블루 :: 책과 영화 ..
이공간 [異契褸雅粹透..
월간 키노 KINO 인덱스 ..
1+1=2
For the great stone f..
쓸데없는 것들의 박물지_
╔☺ ♫♪ 유치짬뽕 샤..
英雄本色
후랭클리 스피킹
잉여력27년
양을 쫓는 모험
Jeimian in Okinawa ..
23시 59분의 잉여로운 잡담실
그냥 사람이 사는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김부장의 가구 만들기
낭만주의자의 취향
寂兮寥兮
DICKHOUSE
finnegans cake
b군, m양을 만나다
.
뿔언니의 쓰잘때기 없는..
허주사우르스
zizek
hanuol blog
新 YoRoZU放談
ひるの幻、よるの夢
애자일 이야기
Homo Peregrino in the..
poeme electronique
커피광 낙서광
Backstage
QUELPART
Like a Complete Unk..
ex
펠레아스의 이글루
좋은 것만 좋아
How I Learned To Sto..
새로운 것은 언제나 신나게..
the Sputnik Sweethe..
무재칠시(無財七施)
예술영화전문블로그 씨..
Fantastic world
괜스레저렇게
thru and thru
Lost and Found
나의산행기
밤의 열두 시간
O.O
-
참 쓸쓸한 당신의 독
여보게저기저게보여
mocca
Make it count. Meet m..
다섯번째 방
정치는 현실입니까?
안녕하세요
hongahn.me
youlhwadang 'librar..
...............
PLAYGROUND
Hey Julie
joooh
Post Gun-in era
숨은 방
베를리너에서 서울리따로.
앤잇굿? Since 2007
steal life
수줍은 느낌의 미소
.
I'm Not Joking
~Floating Paradise~
dunkbear의 블로그 3.0
FLOW
시사만화 '골판지'
The Last Order
Secret Chamber
SEOUL-in
words can hurt you
♨ 영혼은 죽지않아- 하..
crisp
인생이란 필드의 문화기술지
arctic letters from lon..
wanna be a free man.
클래식 음악 노트
Jiy
잘나가는 꼬마사자의 사파리
이글루 파인더

포토로그

D E L I U S
태그
퐁텐블루 그랑트리아농 프랑스여행 들라크루아미술관 파리 일리야세갈로비치 로댕미술관 오르세 클뤼니중세박물관 퐁텐블로성 퀴리뮤지엄 베르사이유궁전 퐁텐블루성 뱅센 쁘띠트리아농 파리여행 오르세미술관 세갈로비치 캐브랑리박물관 키스해링 키스해링전 얀덱스 팡테온 베르사유궁전 베르사유 일랴세갈로비치 기메박물관 퐁텐블로 퀴리박물관 파리건축박물관
전체보기
rss

skin by Ho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