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하향평준화론의 시작
하향평준화론의 시작 : 이공계 기피와 의약계열 쏠림현상


학력저하론은 1999~2000년 사이 서울대 이공계열 교수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서울대에서는 입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낮아졌음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때 즈음부터 몇 년에 걸쳐,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에 들어온 신입생들의 수학 성적이 하락한 것이다. 매년 동일한 시험문제로 평가를 했을 때 점수가 낮아졌으므로,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된 것은 분명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때가 서울대 공대·자연대 학과들의 커트라인이 지방대 의대보다 낮아진 시점이다. 1997년 연말에 IMF 구제금융을 받고 나서 1998년 구조조정의 광풍이 몰아닥치면서, 이공계열 연구인력 역시 대량으로 해고되었다. 꼭 연구인력이 아니라 해도 사회 전반적으로 고용불안정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연구인력 해고와 사회 전반적인 고용불안정이, 이과 최상위권 학생 학부모들에게는 '무조건 의약계열로 보내야겠다'는 심리를 낳았다. 이과 기피 및 이공계열 기피는 90년대 내내 조금씩 확산되던 현상이지만, 이때부터 고착화되기 시작하였다. '의치한'(의학-치의학-한의학) 선호현상이 극에 달했다. 이제 이과에서 최상위권 성적대의 학생이 의약계열을 택하지 않고 이공계열로 진학하면 '괴짜' 취급을 받기 시작하였다. 서울대 자연대 또는 공대와 지방대 의대에 동시에 합격한 학생이 지방대 의대를 선택하는 현상은 90년대에도 있었지만 이때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 초반 내내 계속 심화되어, 2000년대 중반부터는 심지어 서울대 공대와 지방대 약대에 합격해도 지방대 약대로 진학하는 경우를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2000년경을 기점으로, 예전 같으면 한양대나 연세대 공대에 갈만한 학생들이 서울대 공대에 가게 되고, 최고의 수학·과학 실력을 가진 학생들은 전국의 의약계열로 퍼져가게 된 것이다. 입시전문가들의 분에는 이러한 현상이 뻔히 보였는데, 그 여파를 고스란히 안게된 이공계열 교수들은 진짜 원인을 규명하여 이를 사회적으로 교정하려고 시도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수준이 떨어졌어'라는 속좁은 넋두리를 해댔고 이는 언론에 경쟁적으로 보도되었다. 처음에는 '학력저하' 현상에 대하여 논란이 이뤄지다가 누군가 이 현상에 대하여 '하향평준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에서 '하향평준화'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확산시켰다. ...



[이범의 교육특강]중에서, 이범, 다산에듀, 2009




미혼에 조카도 없고 다시 수능을 볼 의사도 없는 상태라 교육뉴스는 남의 일 -_-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교육문제에 대해 전혀 무지한 상태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찾아 읽은 책입니다. 종종 저자의 칼럼을 읽었었고 본문에도 칼럼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어서 반복학습을 받는 느낌이 강한 것이 좀 아쉬웠을 뿐, 사교육, 공교육, 교육제도에 대해 그동안 내가 참 무지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기회가 되었습니다. 밑줄 친 부분은 평소에 들었던 의문에 대한 답이 정리되어 있어서 옮겨봤습니다. IMF 이후를 정리하는 이야기에서도 의대, 약대 및 전문직 선호가 강화된 현상을 접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서울대 자연계의 대학원까지 졸업한 후 다시 수능을 봐서 서울 소재 대학의 의대에 들어간 사례를 알고 있는 터라 좀 더 확실하게 이해가 되네요. 저자도 이 대목 앞에 이야기 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상위권 애들이 예전의 상위권 애들보다 공부를 적게하는 것 같지 않은데 왜 학력이 떨어졌다고 그러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거든요. 고교교육이 부실하다.. 수능이 쉽다... 애들이 공부를 안한다... 이해찬이 이렇게 만들었다... 등등의 많이 이야기가 있었지만, 역시 결론은 사회의 변화에 민감한 부모님/학생 본인들의 본능적인 선택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나 싶네요. 저처럼 요즘 교육에 대한 이슈에 대해 궁금은 하지만 어떤 책을 봐야할지 난감했던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




p.s. 그나저나 위의 예는 근본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비둘기 배설물로 인한 박물관 외벽 유지보수 예제를 대체해도 될 것 같네요. :-)
by delius | 2010/01/16 10:57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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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유남권 at 2010/01/16 11:35
흥미로운 분석이네요.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
Commented by 55 at 2010/01/16 11:51
저것 또한 통계적인 증명 없는 일반론일 뿐입니다.

한국에서 서울대 학생들의 학력 저하 얘기가 나온 건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가 유명해진 후에야 나온 얘기입니다.

이 또한 설명 중 하나로 기능할 수 있겠죠.
Commented by 산왕 at 2010/01/16 12:15
문제는 이공계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이겠죠. 문과에서는 서울대 법,경영이 여전히 최고의 선택이었을 텐데도 거기서도 학력저하 이야기가 없었던 건 아니란 말이죠.

일본에서 유도리 세대에서도 유도리 초반세대와 요즘 세대 간에 너희가 더 멍청해!라고 싸우는 걸 보면서 묘한 느낌을 받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구분이 있긴 있더라고요.
Commented by 푸리 at 2010/01/16 12:42
이공계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는 이루어졌습니다. 보여주는 걸 보기만 하는 세대라 스스로 하려는 학습열의나 집중력은 많이 떨어지죠. 물론 최고득점인 학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을지 모르지만 평균을 내는 집단에서 중하위권 성적들의 성적이 더더더 떨어져버리면 전체적인 하향평준화가 일어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고 이 문제에 대해 제 블로그에서 언제 한 번 심도있게 다루어볼 생각이었지만 -_- 귀찮네요 ㅋㅋ
Commented by Frey at 2010/01/16 14:34
대한민국 최고의 학원강사 중 한 분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는 어렵네요;
Commented by delius at 2010/01/16 15:42
- 유남권님 :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55님 : 말씀하신대로 설명 중 하나로 기능할 수 있겠네요. 예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은 교양이나 인문학/자연과학의 소양이 없고 스스로 할 수 있는일이 없는 도쿄대생에 대한 지적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일본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졌어... 하는 이야기는 [하류지향](우치다 타츠루)을 통해서도 접한 바 있었고 다양하게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 산왕님 : 서울대 법,경영 갈 애들도 다 의대, 치대로...(퍽.. ^^;;) 너희가 더 멍청해! 하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항상 저는 더 멍청한 쪽에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ㅠㅠ
- 푸리님 : 저도 최고득점 학생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위의 글에 많이 공감했어요. 전체적인 학생들의 학력 관련 사항은 또 다른 문제인것 같은데 제가 2가지를 섞어서 이야기를 했네요. 의도하지 않게 떡밥을 던진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흑흑. 심도있게 다루실 포스트 기대하겠습니다.
- Frey님 : 흥미로운 분석 중 하나로 보셔도 될 듯 합니다.
Commented by 꿈꾸는문어 at 2010/01/16 21:39
문제는 교육이 바뀌었다면 평가도 따라 바뀌었냐는 데 초점을 두어 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즉, 평가 타당도 (Assessment Validaty)의 문제입니다. 일례로 미국에서도 요새 아이들의 읽기 능력이 떨어졌다면서 그 원인을 인터넷 사용의 증가로 보는 추세가 있는데요. 에머리 대학 교수인 Mark Bauerlein이 쓴 "The Dumbest Generation: How the Digital Age Stupefies Young Americans and Jeopardizes Our Future" 같은 책이 대표적입니다. Youtube 같은 데서 강연 내용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과거의 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표준 평가 도구가 현재 디지털 시대의 읽기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도 있어요. 즉, 과거의 선형적 텍스트 중심의 읽기적 도구를 가지고 지금의 하이퍼 텍스트 중심과 멀티미디어 해독이 중요한 기능이 되는 세대의 아이들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느냐는 문제죠. 진중권 씨가 비슷한 말을 한 걸 강연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Digital Literacy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의 이슈가 나타납니다.

수학이나 과학도 마찬가지인데요, 교육적 패러다임이 계속 변화하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비해서 수학이나 과학적 기초 능력은 비교적 변화를 덜 겪는다고 믿고 있지만) 교육의 초점이 대수적 계산이냐, 상황의 추상화냐 수적 변환이냐에 따라서 평가도 달라졌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평가 도구가 달라진다면 통시적 비교 자체가 되지 않으니까 과거에 비해서 실력이 떨어졌다, 높아졌다를 말하기가 어렵겠죠.
Commented by delius at 2010/01/16 22:13
- 꿈꾸는문어님 : 실력을 측정하는 문제 뿐만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조건은 달라져도 여전히 통시적으로 비교하고 그 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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