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올해 처음 나온 16번째 블랙캣 시리즈입니다. 번역본 띠지에 잘 나와있듯이 화려한 수상경력의 작품이며 작가인 낸시 피커드 작품 중 국내 소개되는 첫작품인 것 같습니다. 줄거리는 제가 좋아하는 '과거의 죄는 긴 그림자를 남긴다'는 식의 이야기인데 1987년의 사건과 현재(2004년)가 연결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1987년 신원불명으로 처리된 10대 소녀의 죽음.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 날을 기점으로 인생이 바뀐 주인공 애비와 렉스, 미치가 묶여있던 감정을 풀고, 잃어버린 사랑을 찾고, 17년 전 죽은 소녀에게 이름을 찾아주는 이야기라고 짧게 요약하고 싶네요. ^^ 복합적인 이야기라서 어찌 보면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가족사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소설이기도 하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면에서는 추리소설적인 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서 이야기의 재미를 톡톡히 느끼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큰 반전이나 엄청난 전개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하는 구석은 많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1~2군데에서 헉 하면서 놀라고, 2~3군데에서는 저런... 하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래는 가슴아프게 느껴졌던 한 대목으로 애증의 관계가 있는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났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의 흐름을 적절하게 잘 묘사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옮겨적어봤습니다.
... 그들이 서로를 알아본 처음 몇 초 동안, 둘은 같은 생각을 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이 순간, 둘 사이에는 지난 세월은 존재하지 않았다. 예전과 같은 우정만이 있을 뿐이었다. 마치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잊고 싶은 기억은 다 지워져 버리고,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는 것과 같았다. 이 순간에는 오직 좋았던 과거만이 있을 뿐이었다. 최근 몇 년의 기억은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둘은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이봐!"라고 소리치고 크게 웃을 뻔했다. "어떻게 지냈어?"라고 안부를 묻고 웃을 뻔했다. 그리고 둘은 그들이 헤어졌던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날 뻔했다.
잠시 후, 미치는 둘 다 말문이 막혔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렉스는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문을 열어둔 채 불명확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둘은 행복한 길로 가는 문을 닫아버렸다. 십여 년이 지나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서로를 응시하며 내리는 빗 속에 서 있었다. ... 마지막의 처리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 흠.. 이렇게 끝나도 되는거야? 좋긴 하지만~ 하는 마음 ^^ - 이전에 나온 다른 작품들과 함께 블랙캣 시리즈 중에 한 권을 장식한만한 빼어난 소설로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영화화된다면 이 역은 누가 하는 게 좋을까 하고 상상해보기에도 적합한 작품이에요. :-)
[서지정보]
제목 :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원제 : The Virgin of Small Plains (2006)
지은이 : 낸시 피커드 Nancy Pickard
옮긴이 : 한정은
출판사 : 영림카디널
발간일 : 2009년 01월
분량 : 456쪽
값 : 12,000원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소설 내용을 생각한다면 The truth did not die with her.이라는 문구의 2번째 원서표지가 제일 잘 어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