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드라마 [대왕 세종]을 가끔 보면서 정동환이 연기하는 조말생이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노회한 정치가의 표본처럼 보이는 조말생은 신진세력과 대립하는 수구세력으로 그려지면서 세종을 압박하기도 하고, 최근 그려지는 모습에서는 경녕군과 역모를 꾸미기도 합니다.(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의외로 조말생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는 어려웠는데 마침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알게 되어 읽어봤습니다.
책은 노비소송 관련 청탁으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당시 병조판서에 있던 조말생을 탄핵하는 상소로 시작합니다. 원래는 사형까지 해당되지만 세종은 귀양정도로 마무리 짓고 4년이 지난 후 관직에 복귀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세종과 사헌부/사간원과 극심한 의견대립에서, 어떨 때는 세종이 일단 뜻을 접고, 어떨 때는 언관들이 주장을 굽히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내용입니다. 세종은 어째서 부패한 관리를 엄정한 잣대로 다스리지 않고, 예외를 두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래와 같은데,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도 심온 사건과 관련한 인적청산에서 나타난 딜레마 - 조말생 정도의 능력에는 아직 모자라는 집현전 학사들~ - 가 그대로 나타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반상의 구조가 명확한 조선사회에서 관료로 등용할 수 있는 인재는 양반에 한정되었다. 양반이라 하더라도 출신이라든가 전력에 따른 제약이 많았다. 각종 제약을 물리치고 관료로 등용되더라도 사헌부 관료들이 엄격한 유교적 도덕이념에 입각하여 고신에 서경하기를 거부하면 등용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세종은 재위기간 내내 광범위하게 인재를 등용하기 위하여 이러한 제약을 완화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였다. 비상한 재주가 있는 장영실에게 노비 출신의 신분을 뛰어넘어 벼슬을 준 것이 대표적이 예이다.
그러나 한정된 인구 내에서 일정한 신분을 가진 사람 중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람만 인재로 사용하다 보면 인재풀이 매우 제한되게 된다. 관직에 사람을 두려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어서 계속 돌려 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절대적 제약 속에서 인사를 하며 극도로 법치주의를 견지하게 된다면 인재 등용의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결국 세종의 조말생 등용은 엄격한 법 적용을 주장하는 대간의 입장에서 특정 사건에 대하여 예외를 둠으로써 법치주의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하도고 남을 일이지만, 세종이 추구하는 실리주의가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국방정책과 인사정책에 시의 적절하게 반영된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자주국방이라는 시대적 염원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보면 국가 최고의 이익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분량이 적고 내용이 반복되는 터라 살림지식총서 분량으로 다듬어 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고, 조선 초기의 이야기를 빌어 지금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도 조금 있지만 본격적으로 파고들지는 않아서 - 고위층 수사에 대한 어려움과 위원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 정도 - 어정쩡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런 식의 소재는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앞으로 다른 소재로 밀도있는 저서를 만나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서지정보]
제목 :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지은이 : 서정민
출판사 : 살림
발간일 : 2008년 03월
분량 : 250쪽
값 : 10,000원
p.s. 표지 이쁘죠? 이런 표지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