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요리에는 가장 맛있는 순간이라는 게 있어요
  뱅상이 오르되브르를 날라 왔다.
  "푸아그라 소 브리오슈예요."
  하고 마담 푸앵이 말했다.
  설탕을 뺀 브리오슈를 식빵 모양으로 구워 가운데를 둥그렇게 파내고 부용을 굳힌 아스피크를 그 가장 바깥에 채우고, 다음에는 푸라그라를 채우고, 다시 푸아그라 가운데에 트뤼프를 채워 얇게 썬 요리였다. 음식에 정통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페르낭 푸앵이 생전에 만든 가장 유명한 요리로서 잘 알려진 요리였다.
  "자, 들어 보세요."
  "아닙니다, 다 나오고 난 뒤에."
  하고 쓰지 시즈오는 말했다. 그와 아키코 앞에는 요리가 나와 있었지만 마담 푸앵 앞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마담 푸앵이 말했다.
  "당신들이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요리에는 가장 맛있는 순간이라는 게 있어요. 그것은 웨이터가 날라 와서 눈앞에 놓았을 때예요. 요리사도 웨이터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만들고 날라 오는 거예요. 이 요리에 대해 생각해 봐요. 1분이 지나면 아스피크가 녹기 시작하고, 브리오슈에 배어들겠죠. 3분이 지나면, 그다음은 푸아그라가 흐물흐물해져서 배어들어요. 그렇게 해서, 1분마다 본래의 요리가 아닌게 되어 버리는 거예요. 맛있는 요리를 맛있게 먹을 생각이라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바로 먹지 않으면 안 돼요. 사양은 필요 없어요."
  쓰지 시즈오는 샤토 디켐을 아주 약간 입에 머금고, 그러고서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 들었다. 그 나이프와 포크에서도 피셔 부인의 식탁에서 느꼈던 진짜 은의 무게가 손으로 전해졌다.
  '이 얼마나 대단한 맛인가'
  하고 쓰지 시즈오는 그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생각했다. 입 안에 남아 있는 감미로운 와인의 뒷맛으로 브리오슈의 버터와 부용의 풍미, 거기에 푸아그라의 맛과 트뤼프의 향이 하나가 되어 퍼져 갔다.
  "어때요?"
  마담 푸앵이 물었다.
  쓰지 시즈오는 아무 말도 못하고 미소만 지었다.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미식예찬]중에서, 에비사와 야스히사, 김석중 옮김, 서커스, 2008




[야구감독]을 읽을까 말까 망설였지만 [미식예찬]이라는 제목에 좀 더 끌려서 먼저 읽게된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장편소설입니다. 읽을 때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존 인물인 쓰지 시즈오[辻静雄]의 이야기와 픽션을 혼합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랐습니다. 이런 소설같은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 있었다는 점에서 한 번, 그 실화를 적절하게 잘 요리한 작가의 재능에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요미우리신문 기자를 하던 쓰지 시즈오가 미국의 CIA와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루와 함께 세계 3대 조리학교로 꼽히는 쓰지(辻)조리학교를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표면적인 줄거리지만 그 속에 진정한 프랑스 요리를 만들고자 하는 주인공의 의지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묘사가 생생해서 어떤 스릴러를 읽을 때 보다도 빠른 속도로 읽었습니다. 모르는 것을 익히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최고를 먹어봐야 한다고 엄청난 돈을 들여서 본고장으로 연수를 시키고 항상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알고, 자신이 알고 있는 프랑스 요리에 대한 지식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두 널리 알린다는 쓰지 시즈오의 생각들은 이 책을 경영서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책 뒷표지에 보면 일본독자의 서평 발췌가 여럿 있는데 이 중 가장 공감하는 부분을 옮겨 봅니다. "기교의 극에 달한 요리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스포츠의 복잡한 상황 묘사에도 뒤지지 않은 정보량 많은 소재를 선명하게 그려낸 에비사와의 너무나 명석한 문장도 상쾌하다." [야구감독]이 정말 기대됩니다. ^^)/




p.s. 본문에는 쓰지라고 표기되었지만 많은 사이트상에서는 츠지로 표기를 하고 있더구요. 책을 읽고 나면 당연하게 궁금해지는 츠지조리학교 페이지를 몇 개 찾아 봤습니다.


- 辻調理師専門学校
- 츠지쪼그룹교 한국어페이지
- 츠지원 : 한국에 문을 연 요리 아카데미 [관련기사 : 세계 3대 요리교육 명문 `日 츠지조그룹교` 한국 온다]
- 세계적인 조리학교 '츠지쪼그룹교'를 가다


p.s. 번역본, 원서표지
by delius | 2008/06/14 12:00 | underline | 트랙백 | 핑백(4)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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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D E L I U S.. at 2008/12/20 00:17

... [발간연도에 관계없이 읽은 시점 기준 - -;;.] 만화 포함 후보작 15권 - 골든 슬럼버 - 그늘의 계절 - 나이팅게일의 침묵 / 제너럴 루주의 개선 - 돌아보지마 - 미식예찬 - 방황하는 칼날 - 불안감에 시달리는 소년 - 살인의 역사 - 서라벌 사람들 - 아주 사적인 시간 - 악인 - 어쩔 수 없는 물 - 푸른 알약 - 플라워 오브 라이 ... more

Linked at D E L I U S.. at 2009/04/01 00:41

... 일품요리를 먹은 것처럼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느꼈다"는 평이 있는데 이 책의 느낌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입니다. 미스터리는 양념인 것이지요. ^^ 작가는 츠지요리학교 - 그 [미식예찬]의 츠지~ - 를 나온 프랑스요리사. 그래서 그런지 요리에 대한 묘사나 음식의 맛을 표현한 부분은 더할나위없이 풍성하고 멋집니다. 예를 들면 "녹아들 것 같은 푸아그 ... more

Linked at Hello : 미식예찬과 KB.. at 2009/07/18 12:25

... 도로 먹어야 속이 편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디저트조차 버겁다. 맛있는 음식은 많은데 그걸 다 챙겨먹기에는 위장 크기가 너무 모자라다. 뭐, 돈도 없지만ㅋ 아무튼, 예전에 delius님의 포스팅을 보고 읽은 책이 있다. '미식예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링크의 delius님이 이미 너무 잘해주셔서 별로 덧붙일 말은 없고, 프랑스 요리와 일 ... more

Linked at D E L I U S.. at 2009/07/25 23:55

... 음식 카테고리에 어울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라서 ^^;;; 예전에 [미식예찬]을 무척 재미있게 읽고 나서 츠지조그룹교(辻調グループ校) 사이트(한국어버전도 있습니다~ http://www.tsuji.ac.jp/korean/index.html)를 ... more

Commented by euphemia at 2008/06/14 14:05
원서 표지가 너무 아름다워요 ;ㅁ; 얼마 전에 어설픈 일러스트 표지들을 보면서 '한국에서는 소설책 표지에 사진을 쓰는 걸 왜 그렇게 금기시하냐' 고 투덜거린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반대인데도... 역시 그림이냐 아니냐는 본질과는 상관없는 문제였나...ㄱ-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볼까 하던 중인데, 이것도 볼까 싶어요. 아, [해프닝] 도... [레이디 인 더 워터] 이하라고 해서 공포에 떨던 중이었는데 그래도 delius님 리뷰를 보니 볼 만한 포인트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약간 혹하는 중입니다.
Commented by 제갈교 at 2008/06/14 17:13
번역본도 원서표지도 전부 좋네요. ^^
그건 그렇고 푸아그라가 나오면 아무래도 거위에게 먹이 먹이는 장면이 떠올라서 (분명 몇 년 전에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바 있습죠.) 참 뭔가 거북합니다. (그래도 주면 먹지만...) 뭐... 중국에 산다는 자체가 어떻게 키워졌는지도 모를 고기들 먹는 것과 일맥상통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
Commented by joyce at 2008/06/14 18:19
읽고 싶어집니다. 야구 감독 재밌게 봤거든요.^^

일본어판 표지가 예쁘긴 한데 한자를 한글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어떻게 보일까 싶네요. 아무래도 책 크기도 다르고 본문의 글자 크기도 다르고... 거의 모든 게 다르니까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한자가 안정되고 예쁘기는 합니다. 한국어판에서 일일이 칼질을 해놓은 제목 글씨를 보니 이 무슨 낭비인가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delius at 2008/06/14 22:16
- euphemia님 : 역시 그림이냐 아니냐는 본질과 관계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저도... /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의 경우 euphemia님은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볼까 하시던 중인 것으로 보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 / 사실 음악이 좋다고 영화를 권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만 음악이 영화랑 참 잘어울려요~ 나머지는 적극 권장 못하겠어요 ㅠㅠ
- 제갈교님 : 하지만 비싸서 앞으로 먹을 일은 전혀 없지 않을까 합니다. -.-; / "어떻게 키워졌는지도 모를 고기들 먹는 것" ㅠㅠ
- joyce님 : [야구감독] 보셨군요~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일본쪽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표지가 글자 때문인지 그렇게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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