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러나 복수하지 않으면 더 괴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 범인을 죽여도, 사체를 토막 내도 딸을 빼앗긴 원한의 만 분의 일도 풀리지 않는다. 슬픔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살려두고 반성하게 만들면 원한과 슬픔이 줄어들까? 아니다. 이런 인간쓰레기들이 반성할 리가 없다. 만약 반성한다고 해도 에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다시 옛날로 돌아갈 리도 만무하다. 더구나 이렇게 극악무도한 녀석이 앞으로도 계속 살아 있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그것이 비록 교도소라 할지라도.
  그는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계속 식칼을 휘둘렀다. 범인에게 복수하나고 해도 원한이 풀리지는 않는다.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내일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복수하지 않으면 더 괴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죽을 때까지 지옥 같은 삶이 계속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불합리하게 빼앗긴 사람은 어디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없다. ...



[방황하는 칼날] 중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이선희 옮김, 바움, 2008




죄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미성년자에게 딸을 잃은 아버지가 자기 손으로 범인을 찾아 처단하는 줄거리만 보면 소설/영화 [타임 투 킬]이나 예전 노란색 장정이 인상적이었던 고려원의 미스테리 시리즈 중 하나 [복수법정]과 유사한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재나 피해자의 가족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는 사법제도와 법의 맹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 모순에 대해 독자가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이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사건을 둘러싼 외적인 요소 보다는 주인공인 아버지 나가미네와 그를 추적하는 형사들인 오리베, 마노, 하쓰마쓰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일 겁니다. 거기에 주변인물들 이 모두 생생한 목소리를 내주면서 한 편의 시사프로그램 속 재연을 보는 느낌마져 들게 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이런 큰 줄기의 사건을 다루는 소설에서는 곁가지식으로 식상하게 처리 될 수 있는 가해자의 어머니들이나 주간지 기자에 대한 묘사에 감탄했으며,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반전을 숨겨둔 것에도 놀랐습니다. 500쪽 넘는 소설이지만, 첫장면부터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예상치 못하게 바로 초반부터 사건이 전개되고, 중반에 잠깐 숨을 고를 틈을 주고나서는 쭉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흔히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마다 말하는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게 하는 힘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이야기의 흐름은 거침이 없고 마지막 결말에 대해 여러갈래로 상상을 하게 만들면서 읽는 사람을 붙잡아 놓습니다. 범죄와 처벌, 피해자와 가해자, 사적복수에 대한 입장 등 개인적으로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기준을 마구 흔들어 놓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은 정말 너무 안타깝더군요. 책을 읽으신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p.s. 옮겨적고 보니 책 내용과 너무 동떨어져 보여 따로 밑줄친 부분


다카아키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체스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처음에는 모든 말을 다 가지고 있지. 그대로 있으면 평온하게 지낼 수 있지만 게임인 이상 그런 건 허용되지 않아. 어떻게든 움직여서, 자기의 진지에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그리고 많이 움직일수록 상대 말을 쓰러뜨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기 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어. 그런 면이 사람의 인생과 똑같지 않니? 또 상대의 말을 빼앗았다고 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없지."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비슷한 느낌
by delius | 2008/06/07 00:04 | underlin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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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D E L I U S.. at 2008/12/20 00:17

... 관계없이 읽은 시점 기준 - -;;.] 만화 포함 후보작 15권 - 골든 슬럼버 - 그늘의 계절 - 나이팅게일의 침묵 / 제너럴 루주의 개선 - 돌아보지마 - 미식예찬 - 방황하는 칼날 - 불안감에 시달리는 소년 - 살인의 역사 - 서라벌 사람들 - 아주 사적인 시간 - 악인 - 어쩔 수 없는 물 - 푸른 알약 - 플라워 오브 라이프 - 황금을 안 ... more

Commented by 제갈교 at 2008/06/07 00:50
뭐랄까 표지가 우울해요. ㅠㅠ
음음, 그나저나 이상하게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이 "피의자의 인권"은 종종 외치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인권"은 별로 신경 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 언젠가는 요순시대같은 평화가 와서 범죄자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자도 안 나왔으면 하는데, 너무나 큰 몽상...^^;;;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6/07 02:03
사두고서 아직 못 읽었어요. 읽고나서 대화해요~
Commented by delius at 2008/06/07 10:38
- 제갈교님 : 네.. 소설이랑 표지가 잘 어울려요. 우울해요 ㅠㅠ / 네 저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나저나 요순시대가 오면 치수사업에 집중해서 대운하 사업을 하는 거 아닐까요.(퍽)
- ArborDay님 : 어떤 느낌이실지 궁금해요~
Commented by 제갈교 at 2008/06/07 18:07
그 치수하고 대운하는...orz
Commented by delius at 2008/06/07 20:14
- 제갈교님 : Orz
Commented by 배시시 at 2008/06/07 22:13
착각에 의해 뜬금없이 영화 [아들의 방]을 떠올리며 나름 숙연한 감상에 빠져 게시물을 읽다가, 덧글 읽으면서 코미디로 급전환합니다. 요순시대가 오면 대운하라닛! --;;
Commented by keachel at 2008/06/08 16:55
저도 마지막 장면은 정말 가슴이 아프더군요. 엔딩보면서 울면서 읽었습니다. 여러모로 소년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머리속으로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실제로 저 상황이 되면 저도 총을 들고 뛰쳐나갈듯 싶습니다.
그나저나 원서의 느낌은 딱 방황한다는 느낌의 표지지만. 국내본의 표지는 그 상황에서의 느낌을 나타내주는 느낌이네요..
Commented by delius at 2008/06/09 13:36
- 배시시님 : 시절이 하수상하니 농담으로라도 ㅠㅠ
- keachel님 : 저도 가슴이 아려오더군요. 마지막 장은 다시 읽어봤어요. / 국내판 표지도 인상적이에요. ㅠㅠ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10/12 23:51
이 책을 읽게 되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네요. 정작 손에 잡고나서는 한달음에 끝까지 내달렸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적어도 정말 잘 읽히는 글을 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점만큼은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답이 없는 혹은 답을 모르는 세상 속에서 저도 어떤 선택을 내릴지 모르겠네요, 닥쳐봐야 알겠지만 피하고 싶은게 사실이구요. 너무 슬펐어요.
Commented by delius at 2008/10/13 08:02
- ArborDay님 : 정말 한 번 손에 잡으면 그냥 쭉 읽게 만드는 힘이 대단해요. / 네.. 동감입니다. 그런 상황에 부딫히지 않기를... 참 슬픈 소설이었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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