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일은 사람을 강제하는 힘이 있다
... 일은 사람을 강제하는 힘이 있다. 사용자를 증오할 때조차도 그랬다. 혹독한 육체노동의 리듬에 익숙해질수록, 주방을 깨끗하고 정돈되게 유지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에 익숙해질수록, 고된 노동은 오히려 이들을 그 자리에 묶어두는 고약한 성질이 있었다. 일자리를 옮겨 처음 보는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그렇지 않아도 피곤하게 사는 이들에게는 지나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서로를 이해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것도 이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


... 기회의 문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구실로, 출신이나 운이 좋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어도 문제삼지 않는 게 이들이 말하는 능력주의라는 이야기다. 마이클 영은 저서 [떠오르는 능력주의 The Rise of the Meritocracy]에서 능력에 의해 규정되고 정당화되는 신종 불평등의 끔찍한 망령을 보여준다. 하류층 사람들을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새로운 불평등의 세계이며 개인의 능력 부족보다는 부모를 잘못 만나 열등한 위치에 놓여야 하는 불평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씨름은 무의미한 논쟁에 불과하다. 각자의 재능과 그것을 발휘하는 능력이 제각각인 상태에서, 그리고 승자가 패자보다 수입이 200배나 많은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태어날 떄 부터 똑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권력과 재력을 갖춘 사람은 이를 자녀에게 물려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음 세대는 똑같은 출발선에 설 수 없다. 다시 말해, 좀더 공평한 사회가 되려면 기회와 보상이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 그러나 존스 선생이나 보수주의자에게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역설해야 한다. 존스 선생도 이것까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노동당이 '만인의 기회균등'을 강조하고, '아동 빈곤 퇴치'에 초점을 맞춘 것은 올바를 조치라고 하겠다. 이런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대대적인 재분배가 필요가 이 정책을 과연 정부가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


... 흔히 그렇든 미국과 영국의 사회정책을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미국 빈곤층 노동자가 영국 노동자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바버라 에렌라이히가 그의 뛰어난 저서 [빈곤의 경제]에서 말했든, 이들은 영국보다 다 낮은 최저임금을 받을 뿐 아니라 복지제도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아 실업자라도 실업수당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임차료를 지불할 주택보조금이나 무료 건강검진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 대한 기업의 의미가 큰 문제로 떠오른다. 복지혜택이 적은 국가는 기업이나 개인이 그만큼 세금을 적게 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 나는 적어도 소박한 삶이라든가 버리는 즐거움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가져본 적이 없다. '소비주의'를 포기하고 더 나은 황금시대를 갈망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늘 소비를 좋아했다. 그러나 소비의 즐거움이 좀더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만, 쇼핑은 나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취미생활이기도 하다.(세계적인 상표가 시장을 장악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사람은 값싼 상점에 들어가 보라.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며 세면용품이 가득한 상점에서는 일정한 품질을 보장하는 낯익은 상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나는 외식이나 영화·연극 관람을 좋아하고, 친구와 저녁식사를 하거나 요리하기를 좋아한다. 와인도 좋고, 옷도 좋고, 휴일도 좋다. 비행기를 타고 일주일간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도 즐겁다. 현대사회와 현대 물질주의의 간교함에 대해서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물질적인 동물이었고, 깊은 생각 없이 진보를 갈망해왔다. 나는 소유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한 편안한 삶을 도덕적으로 혐오하지도 않으며, 하찮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도 전혀 없고, 지구상에서 가난한 사람의 삶이 부자보다 어느 면에서는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거나 자연과 더 가깝다는 식의 생각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



[거세된 희망] 중에서, 폴리 토인비, 이창신 옮김, 개마고원, 2004




지난번 도서문답에서 추천하는 책을 꼽아보라는 질문에 답했던 책입니다. "언론인인 저자가 꽤 긴 시간동안 빈민가에 살면서 잡역부, 급식배식원, 텔레마케터 등 저임금을 받는 직업을 체험한 이야기로, 읽고 나서 많은 부분에 있어 기존의 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라고 추천이유를 썼었는데 밑줄만 골라서 올려봅니다.




p.s. 폴리 토인비의 [더 가디언] 칼럼 목록 : http://www.guardian.co.uk/Columnists/Archive/0,5673,-25,0.html


p.s. 제7장 Always Happy Never Sad. 영어전문 PDF 파일. 국내판 번역서의 제목은 "밥 하는 아줌마 - 웃어요, 웃어봐요!"이고 첫번째 밑줄도 제7장의 내용입니다. : http://www.coldtype.net/Assets/pdfs/HardWork.pdf 


... Work can become a compulsive activity, even when you hate your employer. The familiar if harsh rhythms of sheer physical labour, the perfectionism of keeping that kitchen running clean, tidy and well-organised, the sheer difficulty of the daily task seemed perversely to tie them to the place. Changing jobs and starting again somewhere else with new people and new routines was an effort too far in their already overstretched lives. Besides, the friendship and understanding between them kept them together. ...


p.s. 원서표지와 국내판 표지. 국내판 표지 만세~
by delius | 2007/06/24 22:04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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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urejoy at 2007/06/25 03:10
꼭 읽어보고 싶은뎅...
읽을 책은 많고... 할일도 많고...
울 딸은 잠도 없고 나만 붙잡고 놀자하구....
아무래도 애를 재우면서 누워서 읽을 수 있는
독서대를 발명해야 할거 같네요^^
Commented by delius at 2007/06/25 10:06
앗 새벽 3시에 덧글을 올리시다니 ㅠㅠ 건강챙기세요~
Commented by 배시시 at 2007/06/25 12:55
꼭 읽어야지 했었는데, 그새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시 불끈~ 도전의욕이 솟는군.
Commented by delius at 2007/06/25 13:36
네~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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