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
  "무솔리니는 최후에 애인인 클라라와 함께 총살을 당하고, 시체는 광장에 공개되었다는 모양이야."
  "어머나!"
  "군중이 그 시체를 향해 침을 뱉고 매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체를 거꾸로 매달게 되었는데 그러자 클라라의 치마가 뒤집혔지."
  "어머나!"
  "군중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대. 죽여준다, 속옷이 훤히 다 보인다, 하며 흥분했겠지. 어느 시대건 그러게 마련이지 남자들이란. 아니 여자들도 그랬겠지.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치마를 올려주고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서 뒤집히지 않도록 해줬대."
  "어머나!" 나는 그때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을 상상하고는 그 담력에 숨이 막혔다. 주위에서는 틀림없이 무슨 짓이냐면서 성을 냈겠지. 무섭지 않았을까? 네놈은 저 여자를 편드는 거냐, 하며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른다 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대단하지."미츠요씨는 소중한 물건에 숨을 불어넣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사실 나는 늘, 최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사람들이 날뛰고 소란 피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최소한 있지, 뒤집힌 치마 정도는 바로잡아줄 줄 아는, 뭐 그게 무리라면 치마를 바로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해.
  "미츠요씨라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얼마전에 시오리 씨네 집에 갔을 때, 시오리 씨랑 준야 씨야말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치마를?"
  "커다란 홍수는 막을 수 없다 해도, 그래도 그 속에서 소중한 것은 잊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두 사람으로 보였습니다요." 미츠요 씨는 우스갯소린지 말꼬리에 높임말을 썼다.



[마왕], 이사카 고타로, 김소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6




이사카 고타로 작품처럼 안보이다가도 결국은 이사카 고타로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하는 결론으로 끝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전에 본 인터뷰 기사를 보고 상당히 정치성이 짙은 작품인가? 하고 오해했는데 그런쪽 보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에 가까운 소설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이 소설에서도 저렇게 살았으면/살아야지.. 하는 맘을 들게 하는 캐릭터(준야)가 하나 나오는데 위에 밑줄 친 부분은 그런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옮겨봤습니다. 이사카 고타로 팬들이라면 좋아하시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변죽만 울려놓고 싱겁게 맺는 결말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초능력자와 정치인의 본격적인 전쟁([X맨]같은)을 기대하신 분은 잠깐 읽기를 머뭇거리시기 바랍니다!




p.s. 원서표지
by delius | 2007/05/03 23:32 | underline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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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붕어가시 at 2007/05/04 02:38
늘 느끼는 것이지만 독서량에 경의를 표합니다.
Commented by Charlie at 2007/05/04 04:08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보고, 무슨내용이길래..; 라고 생각했었지요. 감탄했습니다. 사람들은 역시 예전이나, 지금이나..
Commented by delius at 2007/05/04 09:57
- 붕어가시님 : 책편식의 영향입니다. 흑
- Charlie님 : 네.. 사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Commented by 미식가 at 2007/05/05 00:21
집단 광기 속에서 이성을 차릴줄 아는 인간이라... 매우 쉬운듯 하면서 어렵네요. 저도 그런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Commented by delius at 2007/05/05 00:27
네 맞는 말씀. "치마를 바로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도 쉽지 않을듯 해요 ㅜㅜ
Commented by 夢影 at 2007/05/05 10:42
마왕 재밌어요. 오싹한 느낌도 있고. 정말이지 그렇게 미쳐돌아갈 때 사람들을 막지는 못하더래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대단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Commented by delius at 2007/05/05 11:27
말씀하신 오싹한 느낌을 저도 느꼈습니다. 준야 부부처럼 뉴스 안보고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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