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즌 빈스 | 제스 월터
[책을 읽고 나서]


앞에 올린 밑줄에도 쓰긴 했지만 올해 읽은 작품 중에 최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유쾌하고 사려깊고 매력적인 주인공과 정교하게 짜여 있으면서도 인공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야기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거든요. 이 책으로 에드거 상에 대한 신뢰가 한층 더 높아졌다는 점도 말하고 싶습니다. 소설을 보면서 이 작품을 영화화 한다면 주인공은 클라이브 오웬이 하면 딱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는데 다른 분들 의견도 궁금합니다.


자세한 이야기 대신에 아래 기억에 남는 구절을 옮겨 봅니다.(물론 지극히 일부만 옮긴 것입니다~) [두개골의 서]에 대해 제임스 블리시가 했다는 말을 이 책에도 적용시키고 싶네요. "즉시 이 책을 구입하고. 반복해서 읽어보라."


[기억에 남는 구절]


... 사람을 두렵게 하는 건 음모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불안감은 불확실성에서 생기는 것이다. 두려운 것은 눈송이 하나나 표 하나가 아니라 눈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알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한결 수월할 거라고 수도 없이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미래를 알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


... 그래 좋다. 때로는 어떤 카드를 갖고 있는가도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자. 그런데 빈스는 놀랍게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15분이건 150억년이건 무슨 상관인가? 또 한 시간인들 어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그간 살아온 세월 속에서 최고의 순간을 기억하려 한다. 가장 황홀했던 섹스, 포커게임에서 거둔 멋진 승리, 아버지랑 자연사 박물관에 갔었던 일……. 그러나 그림에서 한번의 붓놀림을 분리해 낼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서 한 순간을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억은 매 순간의 인상을 직조기계에 얹어서 짜낸 것과 같기 때문에 모든 기억은 동시에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처럼 뭉뚱그려진 기억 속에서 어떻게 한 시간, 또는 1분을 떼어낼 수 있겠는가? 15분과 우리가 평생 살아온 시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으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살다 보면 손을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이 이미 다 끝났을 때가 있다. 경기는 끝난 것이다. 쓸 수 있는 전략은 다 사용했고, 범할 수 있는 실수도 이미 다 드러내 보였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제 위치를 지키고 서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이제 기다리는 것뿐이다. 더 이상 달릴 필요도 없고, 정치적 술수나 타협, 또는 애원도 소용없다. 뭘 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며 이제 남은 것은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뿐이다. 그순간은 한숨과 후회 그리고 모순뿐이다. 이런 것들로 전날 밤을 꼬박 새우게 된다. ...


[서지정보]


제목 : 시티즌 빈스
원제 : Citizen Vince (2005)
지은이 : 제스 월터 (Jess Walter)
옮긴이 : 이선혜
출판사 : 영림카디널
발간일 : 2007년 01월
분량 : 400쪽
값 : 10,000원




p.s. 저자 공식 사이트 : http://www.jesswalter.com/


p.s. 원서표지
p.s. 빈스가 체스둘 때 상대가 꾸물대자 하는 말 모음. 악 넘 재미있어요


"이 나이트를 옮기실 건가요, 아니면 집에서 기르실 건가요?"
"그렇게 손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이다가는 폰이 흥분해서 비숍만큼 커져버리겠어요."
"당신이 저희 할머니처럼 체스를 둔다는 건 알겠네요."
"그 비숍이랑 결혼이라도 할겁니까? 둘이 살림이라도 차렸나보네요."
by delius | 2007/04/29 23:48 | book | 트랙백 | 핑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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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D E L I U S.. at 2007/08/04 21:42

... 중이었습니다. 그게 살해당한 이유였을지도 모르지요." ... [레이븐 블랙] 중에서, 앤 클리브스, 이주혜 옮김, 영림카디널, 2007 [시티즌 빈스] 이후 오랜만에 읽은 블랙캣 시리즈로, 지금까지 시리즈를 장식하고 있는 대단한 작품들 사이에 충분히 낄만한 탄탄한 이야기를 자랑하는 추리소설입니다. 영국 지도의 저 ... more

Linked at D E L I U S.. at 2007/12/19 22:08

... -;;.] 만화 포함 후보작 15권 - 도플갱어 - 바디 - 암피트리온 - 가라, 아이야, 가라 - 기상천외한 헨리슈거 이야기 - 나가사키 - 시티즌 빈스 -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 수달 - 누군가 - 다크 -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암보스 문도스 - 연문 - 왕국의 열쇠 올해 제가 읽 ... more

Commented by Bluer at 2007/04/30 22:04
상당히 매력적인데요?
특히 마지막 PS가 매력적입니다.^^
Commented by delius at 2007/05/01 00:30
그쵸 그쵸 ^^)/
Commented by kokomo at 2007/05/01 06:47
한때(!) 문헌정보학도로서 꼬박 서지정보를 곱게 남기시는 델리우스님이 어지나 기특하신지.... <-- 연장자에게 뭐 이런 버릇없는 칭찬이랍니까. ^^;
Commented by delius at 2007/05/01 10:46
비문헌정보학도의 로망 같은 것이라고 봐주삼 ^^)/
Commented by euphemia at 2007/05/02 19:01
제게도 아직까지 올해 최고의 책으로 남아 있는 [시티즌 빈스] 입니다. 제 블로그에도 썼지만 정말 탐독이란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독서 경험은 의외로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초반을 읽고 있는 지인과 제 수다에서 나온 건 베스에 제니퍼 제이슨 리...^^; 빈스는 좀 더 봐야 알겠다는군요. :D
Commented by delius at 2007/05/02 22:14
네~ 포스트 너무 재미있고 공감가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베스는... 저도 제니퍼 제이슨 리 ^^)/
Commented by 빨간눈 at 2007/05/03 02:29
위트가 넘치는 작가분의 소설같네요.
인용한 구절만 보고도 책을 당장 사고싶어지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건 delius님의 독서리스트에 제가 읽은 책은 하나도 없군요 :)
Commented by delius at 2007/05/03 08:01
네 적극 권합니다~ / 빨간눈님이랑 저랑 독서취향이 많이 다른가 봅니다. 제가 워낙 한 쪽으로 치우친 독서를 하는 탓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
Commented by 북극찐빵 at 2007/05/03 21:41
헉,체스를 저런 말 하면서 둘 수도 있었군요//// (미지의 뭔가에 새로이 눈뜨고 갑니다;;)
Commented by delius at 2007/05/03 23:08
다른 1:1 게임에도 응용해 봤어요. 별게임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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