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번역가들 | 쓰지 유미
[책을 읽고 나서]


궁리에서 나온 [번역가 산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별 고민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예상대로 책은 좋았는데 번역가의 인터뷰를 토대로 한 글이라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그외에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서 일반적인 인문학이나 출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만 하다. 책은 크게 4개 장으로 나눠져 있는데 첫번째는 중국/일본 문학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번역자, 두번째는 다른 나라/언어 번역자, 세번째와 네번째는 서평가나 통역가, 번역가 콜레주, 번역가의 집 설립자 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의 원제는 [세계의 번역가들 - 이문화 접촉의 최전선을 말한다](世界の翻訳家たち―異文化接触の最前線を語る)인데 찬찬히 보다보면 이 책 전체가 번역가들에 대한 긴 헌서처럼도 보인다. ^^ 밑줄 긋고 싶은 곳이 많아서 아래 기억에 남는 구절이 길어졌다.


[기억에 남는 구절]


... 출판 번역만으로 생활 할 수 있을지의 여부에 대해, 나는 학생들에게 번역만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경험을 쌓은 다음이 아니면 무리라고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벌써 30년 동안 번역을 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내 친구들 중에도 번역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많다.
  학생들에게는 금방 출판 번역만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정직하게 말해 준다. 번역은 예술과 같다. 출판 번역만으로 생활할 수 있으지의 여부를 묻는 것은 피아노 연주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으로 먹고사는 것이라면 가능해도 피아노 연주로 먹고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번역가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글만 써서 먹고사는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 유명 작가뿐일 것이다. ...



... 문제는 왕왕 원문에 너무 밀착하는 일이다. 번역가와 출판사의 목적이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 출판사의 목적은 출판해 받아들이게 하는 일이다. 즉 목표는 독자이다. 이에 비해 중국 연구자나 일본 연구자의 목적은 원문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정확하게 번역문으로 복원하는 일이다. 번역으로서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원문에 너무 충실하면 때로 독자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


... 출판사 측의 지적은 번역가들에게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많으며, 그렇게 되면 편집자 측도 번역의 완성에 하나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은 기쁜 일이다. 번역문에 딱 맞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번역가가 그것을 꼭 알아차린다고는 말할 수 없다. 편집자는 다른 역할을 맡고 있고, 또 번역가와는 다른 시점에서 보기 때문에, 번역가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출판사로서는 번역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분의 조건이다. 번역가들은 굉장히 힘든 일을 하고 있고, 우리에게 이런저런 책을 추천해 주는 것도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가들과는 항상 저촉을 유지하고 있다. 출판사를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 번역가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 서평에서 내가 항상 독자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은 외국 문학은 그 나라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를 제외한 보통의 독자는 어느 날 갑자기 일본 문학을 읽자라거나 중국 문학을 읽자고 결심하고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저 책은 좋은 책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소설 같다, 이건 꽤 괜찮은 수필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거나 들어서 읽을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평을 쓸 때 나는 백지 상태에서 그 책을 읽으려고 유의하고 있다. ...


... 러시아는 아주 풍부한 문화적 전통을 가졌고, 외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나라이다. 어떤 책에도 쓴 적이 있는데, 러시아 문화는 항상 밖을 향해 열려 있었다. 유럽에서 이렇게 밖으로 열린 문화는 둘 밖에 없다. 독일 문화와 러시아 문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뭔가 묘한 논리로써 그 개방성이 내셔널리즘으로서의 경사와 결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배외주의로까지 발전한다. 193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 그것이다. 독일은 프랑스 문화나 영국 문화, 또는 동양 문화에 지극히 개방적이었다. 독일인은 셰익스피어나 바이런을 사랑했다. 시인 괴테는 페르시아 시에 정열을 불태웠고, 릴케도 동양에 대해 예사롭지 않는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 나라가 나치를 낳았던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도 외국 문화에 대해 몹시 열려 있으면서도 내셔널리즘에 빠져 있다. 여기에도 문화의 개방성과 그 정반대인 자국 문화 중심주의 사이의 묘한 관계가 있다. ...


... 나는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자마자 여덟시까지 번역을 한다. 콜레주에는 아홉시에 간다. 점심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콜레주에서 일한다. 집에 돌아오는 것은 다섯시 반이나 여섯시쯤이다. 여섯시에서 여닯시까지 번역에 매달린다. 그다음 가끔은 텔레비전 뉴스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그리고 열시나 열한시쯤 다시 펜을 들고 열두시나 한시까지 번역한다.
  그 외에 토요일이나 일요일, 게다가 휴가 기간에도 번역만 한다. 최근에는 거의 바캉스도 가지 못했다. 운동도 하지 않고, 취미로 가꿀 정원도 없으며, 애인을 사귈 틈조차 없다. ...




[서지정보]


제목 : 번역과 번역가들
원제 : 世界の翻訳家たち(1995)
지은이 : 쓰지 유미 [辻由美]
옮긴이 : 송태욱
출판사 : 열린책들
발간일 : 2005년 05월
분량 : 246쪽
값 : 12,000원




p.s. 원서 표지

by delius | 2006/08/05 18:39 | book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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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oyce at 2006/08/06 01:06
러시아와 독일과 일본 문화의 특성에 대한 지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런데 이들의 개방성은 '후발 강대국'에만 고유한 것으로서, 영국 프랑스 같은 '선발 강대국'이나, 나머지 그 숱한 '후발 약소국'에는 폐쇄성과 민족주의가 주도적인 듯합니다.
Commented by delius at 2006/08/06 08:57
그런 이중잣대가 있었군요. 베토벤을 낳은 나라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이런 글을 종종 봐왔던 터라 그 부분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Commented by joyce at 2006/08/06 11:34
아... 제 댓글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었네요. 후발 강대국의 문화는 개방주의적이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선발 강대국은 타문화에 무관심하고, 약소국은 방어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히므로 개방적이기 어려운 듯합니다.
Commented by delius at 2006/08/06 11:50
아 저는 다른쪽으로만 생각했네요. 세심한 댓글 감사합니다. ( _ _ )
Commented by Mr.Dust at 2006/08/28 22:28
몇번인가 읽어볼까 하다가 미뤄둔 책인데,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읽으면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그나저나 마지막 문단은... 굉장히 우울하군요. ;;;
Commented by delius at 2006/08/29 10:17
마지막 문단의 번역가분은 전업번역가가 아니라 저런거야... 하고 생각은 하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 게다가 휴가 기간에도 번역만 한다."는 말에는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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